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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이해인/모두 사랑하게 하소서

입력 | 2001-06-17 18:20:00


하얀 찔레꽃이 향기로 말을 건네 오고, 탐스럽게 핀 넝쿨장미가 길목마다에서 환한 웃음을 밝혀주는 계절입니다.

‘꼭 필요한 만큼의 비를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요즘 저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새롭게 사랑하게 하소서’ 하는 기도를 자주 바칩니다. 뒷산에서 오랜만에 뻐꾹새 소리가 들려 오는 이 아침, 오늘은 이런 기도를 바치면서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우리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세계지도에서도 눈을 크게 떠야 찾아낼 수 있는 아주 조그만 나라, 반세기나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으며 지금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때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실망도 더러 하지만 제가 태어난 모국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인내를 지니게 해주십시오.

사계절이 뚜렷해서 아름다운 모국의 산천을 더 잘 가꾸겠다고 다짐하며 그 동안의 무관심과 냉담함을 부끄러워합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특정한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목숨까지 바쳐서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을 종종 기억하며 닮으려는 의지를 갖게 해주십시오. 흰옷 입은 조상들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이 아침, ‘우리나라의 오늘 날씨는…’ 하는 뉴스의 ‘우리’라는 단어가 더욱 정겹습니다.

저의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와 함께 슬퍼하는 열린 마음을 지니고 그들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모르는 이웃을 위해서까지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위인들의 삶에는 못 미치더라도 항상 다른 이의 처지를 충분히 헤아리고 먼저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키워가게 해주십시오.

특히 구체적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들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는 따뜻하고 폭넓은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봉사하는 것을 이유로 스며들기 쉬운 자만심, 우월감, 허영심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람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되도록 보류하고 해야 할 사랑의 일에는 빠른 발걸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민첩함을 익히게 해주십시오.

저의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세상에서 누구보다 정답고 소중한 줄 알고 있지만 너무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소홀하게 대하기도 쉬운 사람들. 서로의 이야기를 좀 더 정성껏 귀담아듣지 않아 서운함을 안겨 주고 때로는 함부로 말함으로써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는 사람들. 가장 사랑해야 할 이들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갈라서는 비극과 불행에서 지켜주십시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함께 살아 있는 동안 서로 먼저 이해하고, 서로 먼저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의 관계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가게 해주십시오.

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사소한 일로도 쉽게 의기소침해지는 저를 봅니다. 근심 걱정의 무게에 짓눌리고 불안과 우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곧잘 주위 사람에게까지 우울을 전염시키는 저를 봅니다.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좀 더 밝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사랑, 양심을 물질에 팔지 않는 자유, 거짓을 말하지 않는 용기,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성실함,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성숙함, 잘난 체하지 않는 겸손함, 잘못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떳떳함 등등….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멀리 있는 저를 보며 안타까워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이루려 하지 말고 일생을 두고 꾸준히 노력하는 인내와 기다림으로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그리움으로 저의 하루 하루가 늘 새로운 감사와 기쁨의 선물이게 해주십시오.

이해인(부산 성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