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밤 일본 도쿄(東京)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648회 정기공연이 열린 도쿄 산토리 음악홀. 20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음악팬들은 연주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들은 20여분 동안 ‘브라보’를 외치며 뜨겁게 박수를 보냈다. 어떤 팬은 “영원히 잊지 못할 연주였다”며 감격에 겨워했다. 지휘자도 열 번이 넘게 무대에 다시 나와 팬들의 환호에 답했다.
이날 연주는 4월 도쿄필과 신세이니혼(新星日本)오케스트라가 합병해 도쿄필하모니오케스트라로 태어난 뒤 가진 첫 번째 공연. 지휘자는 최근 특별예술고문으로 취임한 정명훈이었다.
일본의 대표적 교향악단이 야심찬 재생계획 아래 마련한 첫 공연이 한국인의 지휘로 이뤄진 것은 음악계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뉴스다. 도쿄필은 세계수준의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예술혼이 없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왔다. 정명훈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 오케스트라는 테크닉면에서는 유럽수준에 이르렀지만 개성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다.
다른 교향악단 출신의 연주자 138명은 이날 정명훈의 완벽한 지휘에 따라 ‘음악적 합병’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연주곡인 말러의 교향곡 제2번 c단조 ‘부활’처럼 도쿄필의 ‘화려한 부활’을 선언한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일본팬들은 입을 모았다.
많은 일본 음악팬들이 “정명훈에게는 다른 지휘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그처럼 개성이 뛰어난 음악가를 배출한 한국의 음악적 배경은 무엇이냐”며 찬사를 보냈다. 이들은 산토리홀 로비에 전시된 정명훈의 지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연주회장에서 만난 한 한국인은 “최근 교과서 왜곡문제에서 드러났듯이 한일 양국 관계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뛰어난 음악가 한명이 수많은 상대방 국민을 감동시킬 정도로 통하는 면도 있다”고 한국인이 느낀 이날의 감동을 요약했다.
이영이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