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이 북한상선의 잇단 북방한계선(NLL) 침범을 계기로 군의 작전예규 및 교전규칙을 재검토키로 한 것은 모든 북한선박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불충분한 해군력을 분산시키기보다는 위협단계별로 군사적 대응을 달리해 안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동해로 218마일, 서해로 42.5마일이나 뻗어있는 NLL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정서적으로는 호소력이 있지만 현 해군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고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국제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합참은 우선 NLL 작전구역을 세분화해 상황별로 대응조치를 달리하는 방향으로 작전예규를 손질할 계획이다. NLL을 △영해까지의 절대사수구역(12마일) △북한의 군사경계수역과 접하는 접적(接敵)수역(50마일) △공해 등으로 나누고 북한선박도 군함 상선 어선 등으로 구분해 군사적 대응을 달리하겠다는 것.
또 교전규칙도 재검토 대상이다. 교전규칙은 이미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 그 대응조치를 마련해둔 만큼 당장 손질할 필요는 없으나 비무장상선 등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점을 고려한 것.
군은 작전예규의 수정은 “NLL사수 원칙을 사실상 포기한 것” “일본 중국 등 주변국 해군의 행동반경만 넓혀준다”는 등의 우려와 비판을 감안해 면밀한 검토작업을 거칠 방침이다.
전시나 교전상황에서 취해야 할 군의 행동수칙을 담은 문서로 모두 군사 2급비밀이다.
합참 작전예규는 전시연합작전계획인 ‘작계5027’에 명시되지 않은 인사·군수분야까지 포괄한 전·평시 세부 작전수칙이다. 합참 작전예규만 500여쪽이며 이에 준해 군별, 부대별 야전예규를 운용하고 있다.
유엔사·연합사 교전규칙은 남북간 정전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단계별 군사적 대응조치를 담은 것. 기본정신은 충돌을 예방해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 가령 적이 소총 사격을 했을 때 야포를 발사한다면 과잉대응으로 교전규칙에 위배된다.
klimt@donga.com
▼해군의 딜레마▼
“아랫돌 빼서 윗돌 괴어야 하나.”
북한 상선의 잇단 영해 및 북방한계선(NLL) 침범 사태 이후 해군에선 이런 하소연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열악한 해군력으로 비무장 선박까지 일일이 식별해 모조리 북쪽으로 몰아내려다 보면 정작 북한 잠수함 등이 침투했을 때 어떻게 방어하겠느냐는 얘기다.
남북한 해군력을 비교해도 우리 해군이 가장 취약한 것은 잠수함(정)이다. 특히 해군은 96년9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과 98년6월 속초 잠수정 침투사건 이후 북한 잠수함 침투 대비에 주력해 왔다. 잇단 잠수함 침투사건을 계기로 NLL 선상을 따라 동서로 초계함 등을 배치했던 것을 잠수함 침투를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배치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
북한 수상함은 개개 규모나 전투 능력은 우리 해군에 미치지 못하지만 척수에선 우리보다 월등하게 많아 ‘북한상선 몰아내기’식으로 계속 대응하다간 자칫 북측의 해상 교란전술에 휘말릴 위험성도 있다는 게 해군측의 지적이다.
해군 관계자는 “북한 상선의 NLL 월선 방어까지 담당하려면 불과 몇년전에 바꿨던 NLL 일자(一字)방어 작전 개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종전 해경이 주로 맡아 왔던 제주해협 감시 임무까지 해군이 전적으로 도맡게 된다면 엉뚱한데서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