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비서실장(왼쪽)이 정선모경찰서장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민주노총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민중연대(공동대표 단병호·段炳浩)는 16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5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제2차 민중대회’를 갖고 가두 시위를 벌였다.
☞동영상 : 동대문서장 쓰러질때 상황[KBS 녹화]
이들은 집회에서 울산 효성공장 경찰 투입과 민주노총 지도부 검거령 등 노동계에 대한 탄압 철회 등을 촉구한 뒤 종로2가 YMCA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 시위로 대학로와 종로 을지로 등 서울 도심 일대의 교통이 마비돼 극심한 혼잡을 빚었으며 인근 상가들은 상당수 철시했다.
특히 이날 오후 5시20분경 종로5가를 행진하던 시위대는 경찰 200명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모습의 허수아비를 압수하기 위해 투입되면서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현장을 지휘하던 정선모(鄭善模·59) 동대문경찰서장이 뒤로 넘어진 뒤 기억상실 증세를 보여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경찰은 17일 “현장 비디오 채증 결과 박하순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41)이 정 서장 뒤에서 어깨를 잡아 당겨 정 서장이 넘어졌다”며 박 국장에 대해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민주노총측은 “정 서장이 다친 것은 유감이지만 이날 충돌의 1차적 원인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있다”며 “박 국장을 구속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연대파업 주도 혐의로 형집행정지가 취소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집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집회와 관련해 “집회시위 과정에서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한 채 질서유지선을 훼손하고 경찰을 폭행하는 등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른 관계자는 전원 검거해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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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장 머리 땅에 부딪혀 일부 기억상실증▼
16일 오후 5시20분경 민중연대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한 서울 종로5가 보령약국 앞.
정선모 동대문경찰서장은 시위대를 향해 “신고하지 않은 김대중 대통령 모양의 불법 조형물을 철거하라”고 방송했다. 시위대가 이 요구에 따르지 않자 정 서장은 조형물을 압수하기 위해 경찰관 200여명을 투입했다.
그러자 50여명의 시위자들이 선두에서 경찰을 지휘하고 있던 정 서장을 둘러싸고 조형물 철거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정 서장을 둘러싼 경찰관 20여명을 뚫고 정 서장 뒤쪽으로 다가간 박하순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이 정 서장의 뒤쪽에서 정 서장의 어깨를 힘껏 잡아당겼다. 정 서장이 뒤로 쓰러진 순간 경찰과 시위대, 취재진이 한데 뒤엉켜 한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혀 실신한 정 서장은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고 있다. 하루가 지난 17일에도 사고 당시 시위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정 서장은 한때 큰딸(33)이 3년 전 출가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지만 현재는 16일 집회 당시 상황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억은 되돌아온 상태.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정 서장은 외상성 부분기억상실증으로 외부 충격에 의해 판단력 등 인지기능에장애를 일으킨 상태”라며 “3, 4일간 더 경과를 지켜봐야 정확한 증세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72년 경사 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정 총경은 지난해 1월 동대문경찰서장에 부임했다. 밤새 정 서장을 간호한 부인 이열자씨(59)는 “경찰복을 입고 공무를 수행 중이던 남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이 너무 야속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17일 서울대병원에는 한광옥(韓光玉) 대통령 비서실장이 방문해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한 실장과 함께 방문한 이무영(李茂永) 경찰청장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서장에 대한 폭력은 묵과할 수 없으며 더구나 정복을 입고 현장을 지휘하는 서장을 폭행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법 질서를 어기는 행위는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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