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악연’이 다시 정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이 92년부터 9년 동안 살아온 평창동 집을 정리하고 이달 말경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하려는 것도 평창동 시절의 끊임없는 ‘불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라는 얘기 때문이다.
50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나 정작 권 최고위원 자신은 한보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가 하면 당내에서 ‘2선 퇴진’ 요구까지 받게 되자 이사를 결심하게 됐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얘기다.
평창동 일대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이 ‘가장 잘 나가는’ 때였다. 당시 실세였던 최형우(崔炯佑) 서석재(徐錫宰)씨와 YS의 차남인 현철(賢哲)씨가 모두 평창동이나 인근 구기동으로 이사해 이 일대가 ‘실세 촌(村)’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YS 정권의 쇠락과 함께 실세촌으로서의 명성도 빛이 바랬다. 최형우씨가 97년 3월 돌연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서석재씨와 현철씨도 모두 ‘불운’을 겪으면서 평창동 일대는 정치인들이 왠지 꺼림칙하게 여기는 지역이 됐다.
‘북한산 자락인 평창동과 구기동의 터가 너무 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고, 최씨와 서씨는 결국 집을 옮겼다.
평창동 빌라에 살고 있는 5선의 김정수(金正秀) 전 의원도 작년 4·13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북한산 행궁(行宮)에 쌀을 공급하던 창고인 ‘평창(平倉)’에서 유래한 평창동 일대는 조선시대 때까지만 해도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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