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16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호텔에서 열린 새천년평화재단(총재 이승헌·李承憲) 후원모임에 초청돼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와 인류평화를 위한 제언’을 주제로 1시간 동안 특별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에는 모리스 스트롱 전 유엔사무차장, 데이비드 스트라웁 주한 미 부대사, 임창열(林昌烈) 경기도지사 등 국내외 각계 인사 6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강연은 지난해 미국 대선 패배 후 뉴욕 컬럼비아대의 언론학 객원교수를 맡은 뒤 공식행사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이례적으로 가진 행사였던 만큼 외국 언론사들도 취재에 나서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정치인이면서도 환경과 평화 운동가로 유명한 그는 정치적 언급은 삼간 채 침례교인으로서 개인적 신념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와 분쟁 해결을 위한 인류의 화합을 호소했다. 그는 아름다운 지구를 담은 슬라이드 필름 몇 장을 직접 준비해 와 보여준 뒤 기독교 신약성경에 나오는 ‘주인이 맡긴 집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악한 종’의 우화를 들려주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지구라는 집을 지키는 데 게을리 한다면 창조주에게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어 “8월이면 둘째 손자가 태어나는데 그 아이가 내 나이가 되고 과학자들이 염려해온 환경오염 문제가 현실로 발생했을 때,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고 변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자”고 호소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또 구약성경에 나오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우화를 언급하며 “카인처럼 주변 사람에 비해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누구나 죄악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몇 년 전 미국의 한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2명의 고교생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프리카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분쟁을 예로 들며 “인간관계에는 아주 조그만 차이가 잘못된 자만심이나 자괴감으로 이어져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흔하다”며 “차이를 극복하는 길은 우선 각자의 차이를 인정한 뒤, 이 차이를 포용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이날 오전 전세기 편으로 입국했으며 강연을 제외한 다른 행사는 일절 갖지 않고 17일 오후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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