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준설(浚渫)을 서둘러야 할 때다.’ 4개월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전국의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이 수십년간 쌓여온 토사를 걷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세종대 토목환경공학과 이창훈(李暢訓) 교수는 “가뭄으로 저수지의 물이 말랐을 때 준설을 하게 되면 20%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물이 차 있을 때는 배수로를 따로 만들어 저수지 물을 방류하거나 바지선을 띄워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수지 3277개를 관리하는 농업기반공사는 현재 준설이 시급한 저수지는 726개로 전체 퇴적량이 3773만㎥에 이르러 이를 준설하면 저수량 70만t 규모의 저수지 약 50개를 새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94년 가뭄 이후 매년 저수지 준설작업을 실시해 왔지만 현재까지 준설을 마친 곳은 전국 1만7956개 저수지 중 10%에도 못 미치는 1535개에 불과하다.
농림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현재 전국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46%. 하지만 실제로는 바닥에 쌓인 토사량이 저수지별로 적게는 저수량의 10%에서 많게는 30%를 ‘잠식’하고 있다고 농업기반공사는 밝혔다. 제때 준설이 이뤄졌으면 지금처럼 극심한 물부족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다. 당장 준설을 서두르지 않으면 현재의 담수능력으로는 장마철 홍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통상 70만t 규모의 저수지를 준설하는 데 30일 정도가 걸리고 지금처럼 물이 말라 있을 때는 약 20일이 걸린다는 점을 들어 준설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예보대로 장마전선이 곧 북상할 경우 공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농업기반공사 이종원(李鍾元) 용수관리처장은 “문제는 예산”이라며 “정부는 100억원을 투입해 150여개 저수지의 준설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예산을 더 투입한다면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상당수 저수지 준설을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둑까지 차오른 저수지 바닥〓“소류지와 저수지들이 대부분 ‘왜정’ 때 건설됐으니 ‘환갑’을 넘긴 게 태반이야. 그런데 준설을 하지 않아 바닥이 둑까지 차 올라올 판이지.”
16일 경남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영동저수지 아랫마을에서 6대째 살아온 배효철(裵孝喆·77)씨의 푸념이다. 배씨는 10년 전만 해도 이 저수지는 뒤편 어룡태계곡에서 내려온 물을 가득 가두어 농사짓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저수지 주변지역 야산을 개간해 잇따라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토사 유입량이 크게 늘어나 지금은 저수지로 물이 흘러드는 개울이 완전히 막힐 정도로 흙이 쌓인 상태라는 것. 배씨는 “과거 가뭄이 심할 때는 영동저수지 안의 큰 샘에서 나오는 물로 인근 마을 500가구 주민들이 식수를 해결했다”며 “흙이 쌓이면서 샘은 흔적조차 없어졌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예당저수지 상류.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닥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져 있다. 30년째 예당저수지를 지켜왔다는 농업기반공사 예당지부 안흥수(安興洙) 부장은 “이번 기회에 저수지 바닥을 준설해야만 다시는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예산. 예당저수지의 경우 80년부터 모두 100만여t을 준설했지만 62년 축조 당시의 담수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앞으로 200만t을 추가로 준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1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나 올해 확보된 예산은 불과 1억원. 안 부장은 “이번 기회에 예당저수지를 제대로 준설하면 200억∼300억원을 들여 200만t 규모의 댐을 새로 건설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농민 박상호씨(54·예산군 대흥면)는 “95년 홍수 때 저수지 수문을 열어 예산 무한천이 범람해 인근 마을을 삼켰을 때도 준설 얘기가 나왔지만 그 때뿐이었다”고 말했다.
▽준설현장〓16일 오후 4시경 충북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봉저수지. 2대의 굴착기가 굉음을 내며 저수지 바닥의 퇴적 토사를 퍼내고 있었다. 10대의 덤프트럭은 흙먼지를 날리며 연신 흙을 실어 날랐다. 장마가 지기 전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14일 11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된 준설작업은 숨돌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41년 만에 처음으로 뒤집힌 바닥은 금세 검붉은색으로 변해갔다. 저수지의 가장자리 부분은 여러 곳이 토사가 높이 쌓여 둔덕을 이루고 있다. 일부 둔덕은 주변 도로와 높이가 비슷할 정도. 이 때문에 장마가 지거나 비가 많이 와 만수위가 되면 상당량의 물을 그대로 흘려 보내야만 했다.
“저수지가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가뭄 걱정, 홍수 걱정이 없었지요. 하지만 점차 저수지 바닥이 메워지면서 한해와 수해가 반복됐어요.”
농업기반공사 음성지부 봉저수지 담당 권순복(權純福)씨는 “이번 준설로 늘어나는 담수량은 인근 농경지 60㏊에 물을 대줄 수 있는 양으로 가뭄 걱정을 크게 덜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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