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고화질 입체음향 15개월 공들여
KBS 1TV가 20일 밤 10시에 방영하는 ‘환경스페셜’ 특집 ‘디지털로 여는 소리의 사계(四季)’(연출 장해랑)는 국내 최초의 고화질 입체음향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작품답게 선명한 화질과 섬세한 서라운드 음향을 선사한다.
오는 11월 시작되는 디지털 TV 방송을 앞두고 9000여만원을 들여 1년3개월 동안 제작한 이 프로그램은 ‘프롤로그’ ‘겨울, 또하나의 활력’ ‘봄, 깨어남’ ‘여름, 땅 그리고 에너지’ ‘가을, 수고한 자의 풍요’ ‘겨울, 쉼 그리고 여백’ ‘에필로그’를 58분 동안 방연한다.
99년 환경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을 소재로 삼아 자연, 생명, 고향, 삶의 현장에서 듣거나 볼 수 있는 소리와 영상을 영화 화면 비율(16:9)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음과 수려한 영상의 조화가 돋보인다. 소가 여물을 씹는 장면이나 겨울 철새 가창 오리떼의 군무 소리는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생동감이 느껴진다.
또 고즈넉한 시골에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 울음 소리는 정겹고, 새벽 시장 경매에 나선 상인들의 목소리는 삶의 치열한 현장 그 자체다. 보리밭에 내려 앉은 종달새, 둥지를 파는 딱따구리, 흔히 빠가사리로 불리는 물고기인 동자개의 울음 소리, 전남 영광 법성포의 씻김굿, 산사의 법고(法鼓)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특이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나레이션(해설)과 배경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장해랑 PD는 “나레이션 없이 1시간 동안 시청자들을 화면앞에 잡아둘 수 있을까 고민한 게 사실이지만 ‘소리를 보여준다’는 취지를 과감하게 살려봤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이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124가지의 소리를 잡는 것이었다. 강 얼음 깨지는 소리를 녹취하느라 강원도 횡성을 여러 차례 다녀와야 했고 희귀 곤충인 방울벌레 소리를 찾기 위해 전라도, 강원도 휴양림 등을 뒤지고 다녔다. 장해랑 PD는 “국내 방송기술에서 원음 채취 작업이 아직 초보단계인데다 현장 모니터 장비가 부족해 원하는 음을 뽑아 내기가 어려웠다”면서 “이번에 촬영한 내용 중에는 빨래터 등 사라지는 풍경들이 많아 앞으로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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