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항아리’는 베스트셀러 소설 ‘실락원’으로 잘 알려진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집이다. 6편의 중단편 소설은, 불륜의 사랑을 탐미적으로 그린 ‘실락원’에 비하면 밋밋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랑의 또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결혼반지’는 청량음료 회사에 다니는 40세의 세련된 과장과 25세의 부하 여직원의 사랑을 그린다. 유부남을 표시하는 과장의 백금 반지에 매력을 느낀 여직원은 과장이 자신을 위해 반지를 빼고 나타나자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과장의 손가락에서 하얀 반지 자국을 본 여자는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과장의 아내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안녕,안녕’은 50줄의 대기업 임원과 내연의 관계인 20대 후반의 이혼녀 이야기다. 남자와의 관계가 다소 심드렁해진 어느날 여자는 길거리에서 남자가 싸게 파는 치약을 사는 모습에 실망하고는 그와의 관계를 접는다.
‘봄날의 이별’은 10살이나 많은 유부남과 사귄 20세 후반의 디자이너가 주인공이다. 잘 다려진 남자의 손수건, 아내와 자식의 이름을 함께 새긴 남자의 문패를 보고는 그와의 관계를 포기한다.
이처럼 3편의 소설은 중년 남성과 불륜의 관계를 맺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불륜에 대한 죄책감이나 불륜으로 인한 파탄 같은 건 안중에 없다. 담백한 문장으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가면서 사랑이란, 남녀의 관계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눈물 항아리’는 다소 엽기적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으면서 남긴 소원 대로 아내의 뼛가루로 항아리를 만든 중년 남성의 이야기다. 남자는 1년 정도가 지나 새 아내를 맞아들이려 하지만 여자들에게 변고가 생긴다. 항아리 때문이라고 생각한 남자는 재혼을 포기하고 항아리와 해로하기로 마음 먹는다.
작가는 이렇게 사랑을 열정의 산물로만 보지는 않는다. 가정과 세월과 권태와 자의식의 혼합물을 사랑이라고 말하려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작가는 소설 속에서 거듭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밖에 ‘꽉 잡은 손’은 정형외과 의사 출신인 작가가 능청스럽게 의학지식을 적용해 중년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농담처럼 그렸으며 ‘후유증’은 인공심장을 소재로 삼은 짤막한 소설이다. 199쪽. 7천5백원. 도서출판 창해.
김태수t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