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다섯 악동이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의 첫 음악은 ‘말 달리자’였다. 스피커 밖으로 뛰어 나올듯한 직선적인 사운드로 그들은 ‘닥치고 내말들어’라며 자신들의 메시지를 뱉어냈으며 거침없는 라이브로 그들의 이름 크라잉 넛을 각인시켰다.
국내 인디밴드의 '대표'임에도 크라잉 넛의 롱런을 믿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주 활동 무대인 클럽 ‘드럭’을 비롯해 신촌 일대의 클럽은 불법 공연장소였고 마니아를 운집시킨 신촌의 언더그라운드의 활약 역시 일시적인 문화현상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신촌 일대의 지하세계에서 일기 시작한 클럽문화의 파괴력은 거리를 점령한 각종 록 공연에 힘입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크라잉 넛을 위시한 펑크밴드들의 ‘신세대 네멋대로 해라!’ 식의 반항적인 메시지와 다듬어지지 않은 무대 매너는 인디밴드들을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대중음악의 새로운 트렌드로 연착륙하게 하였다.
물론 이런 인디밴드들의 활약은 여전히 댄스와 발라드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는 대중음악의 지도를 바꾸지는 못했으나 TV를 통한 언론 플레이나 뮤직 비디오 없이 음반과 공연만으로 폭발하는 젊음의 에너지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5명의 악동 문화 게릴라 크라잉 넛은 주류와 인디를 오고가는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2집 앨범 ‘서커스 매직 유랑 극단’의 활동에서 보았듯이 이들의 관심은 더 넓은 무대를 향한다. 그동안 후지 록페스티벌 참가, 들국화 헌정 앨범 참여, CF 출연등의 활동은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펑크 록의 에너지와 세상사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을 뿜어내는 악동 크라잉 넛의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발표한 3집 앨범 ‘하수연가(下水戀歌)’는 그들의 모호해진 정체성을 뛰어넘어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꾸게 한다.
지난 2집이 레게, 스카, 폴카, 보사노바, 심지어 재즈를 담아냄으로써 ‘말 달리자’식의 질주하는 사운드에서 탈피를 꾀했다면 이번 앨범 ‘하수연가’는 성숙한 음악을 선사한다. 공연 때마다 외치던 ‘열혈 3류 펑크 키드’의 에너지도 다양하게 표출한다.
특히 사물놀이의 즉흥성을 펑크에 결합한 ‘금환식’이나 트럼펫과 첼로로 창부의 비애감을 전하는 ‘붉은 방’, 크라잉 넛 본연의 사운드 구성이 돋보이는 ‘이소룡을 찾아랏!’, ‘Honey' 등은 스스로 이름붙인 ‘조선펑크’의 짬뽕사운드가 비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이외에도 부드러운 소프트 록 '밤이 깊었네'나 컨트리 구성을 차용한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등의 곡을 통해 크라잉 넛은 음악적으로 폭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
때로는 세상에 육두문자를 날리는 크라잉 넛의 언어는 여전히 비주류다. 하지만 그들이 거침없는 언어로 쏟아놓은 ‘하수연가’ 음악은 크라잉 넛에게 가장 파괴적인 주류로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류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