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청동좌불
경남 합천 해인사가 높이 43m의 세계 최대 청동좌불을 해인사 경내에 건립하는 것과 관련한 찬반 논란이 조계종 내부의 마찰로 확산되고 있다.
해인사 선방에서 안거 중이던 선각(善覺) 스님 등 수좌 20여명은 18일 오후 4시경 전북 남원의 실상사를 찾아가, 불상 건립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수경(收耕) 스님의 방문을 부수고 내부 기물을 파손하는 등 20여분간 소동을 벌였다.
☞ 수경스님의 현대불교 기고문 전문
'자운·성철의 죽음을 곡(哭)한다'
이와 관련, 실상사측은 19일 주지 도법(道法) 스님 주재로 모임을 갖고 수경 스님 개인에 대한 불만을 사찰 경내의 소동으로 확대시킨 이번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해인사측의 사과와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조계종 총무원측은 사태가 예상 외로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곧 해인사와 실상사 주지 등을 불러 중재에 나설 방침이다.
실상사에서 소동을 부린 해인사 수좌들은 수경 스님이 16일 발행된 불교주간지 ‘현대불교신문’에 기고한 ‘자운(慈雲) 성철(性徹)의 죽음을 곡(哭)한다’라는 글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7일 해인사 선방을 빠져나와 18일 아침 서울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 수경 스님의 징계를 요구한 뒤 수경 스님과의 만남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자 해인사로 돌아가는 길에 실상사에 들렸다.
수경 스님은 기고문에서 “자운 성철 스님 등이 속물주의의 상징인 최대 불상을 모시라는 유지를 남겼다면 우리 시대의 고승으로 모셨던 이 두 스님의 이름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려야 한다”며 “세상의 비판과 원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스님의 유지에 따른 불사라는 명분으로 불사를 진행하는 자들도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수경 스님은 30여년간 봉암사 해인사 송광사 등 제방 선원에서 참선수행만 해온 신망이 높은 중진 선승(禪僧)으로 작년 실상사에서 수행하던 중 지리산에 댐을 만든다는 소리에 격분해 산중에서 나와 환경운동에 몰두해왔다.
안거 중에는 부모가 죽어도 선방을 나오지 않는다는 스님들이, 그것도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해인사 선방을 집단으로 빠져나와 이같은 일을 저지른 데 대해 해인사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해인사의 한 스님은 “수좌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안거 중에 선방을 빠져나와 폭행에 가까운 감정적 대응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같은 일을 방치한 해인총림 방장 법전(法典)스님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에 또 다른 스님은 “수경 스님에 대한 항의는 해인사 수좌들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서 한 일”이라면서 “이처럼 논의 과정을 거친 일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는 게 불가의 불문율”이라면서 이번 집단 항의를 옹호했다.
한편 해인사 주지 세민(世敏) 스님은 지난 4일 불상 건립법회를 가진 뒤 이에 관한 비난이 일자 “불상이 들어서는 자리는 원래 허덕사라는 절이 있던 곳으로 이곳의 절터를 복원해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자운 성철 등 큰 스님들의 유지에도 합치하는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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