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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김영하/행복은 오프라인에 있었네

입력 | 2001-06-20 18:51:00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밤새 도착한 e메일을 확인한 다음 늘 다니던 인터넷 사이트를 향해 마우스를 눌러대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더 이상 인터넷에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처음엔 아주 돌연해 보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인터넷에 흥미를 잃을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에 있는데, 그곳엔 영화며 소설이며 노래 등이 넘쳐나는데, 게다가 그것들은 날마다 새롭게 경신되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최신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를 주문하고 유학 중인 친구와 공짜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이 별천지에 싫증이 나다니…. 나는 값비싼 장난감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멍하니 앉아 내게 벌어진 이 변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 떠나자. 떠나는 거다.

그리하여 지난달 8일, 4년 동안 운영해오던 홈페이지의 문을 닫았다. 서운함이 깊었다. 홈페이지를 오래, 그리고 자주 찾던 이들에게는 미안했다. 진심으로 슬펐고 그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건 나와 홈페이지를 찾던 사람들만의 문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동아일보의 한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 홈페이지를 폐쇄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나는 대답했고 그것은 기사가 되어 지면을 차지했다. 나는 그게 왜 기사가 되는 지가 우선 궁금했다. 일개 작가가 홈페이지의 문을 닫고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겠다는 게 어떻게 기사가 될 수 있는가.

바로 그게 문제의 핵심이야. 친구가 말해주었다. 이제 인터넷을 한다는 건 뉴스가 아니야. 그렇지만 인터넷을 안하겠다는 건 뉴스가 되지. 지금 우리 사회는 인터넷 혹은 디지털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주술에 걸려 있는 거야. 그게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이 세상을 휩쓸고 있어. 대통령부터 점쟁이까지 홈페이지를 만드는 세상이잖아.

나는 친구의 말에 동의했다. 그건 정말 주술이야. 최면에 걸린 것처럼 모두들 펜티엄 PC를 사서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그걸로 하는 일은 단순한 서핑이나 다운로드, 채팅이 전부야. 공허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로 가는 밤들이 계속되는 거야.

그렇지만 한 번쯤은 인터넷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지에 대해 반문해 봐도 좋지 않을까? 홈페이지를 닫고 오프라인으로 생활의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이었다.

돌아보면 나를 행복하게 만든 많은 것들이 컴퓨터와 네트워크 바깥에 있었다. 털북숭이 개, 수동 사진기와 필름, 해질녘의 바다, 오래된 오디오, 자동차, 종이책 냄새, 커피 가는 소리와 향, 공구 세트, 여권, 잘 구워진 삼겹살, 살구꽃, 오대산, 흑맥주 등등.

그런데 이 멋진 것들을 만지고, 그것들과 놀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에 나는 모니터만 쳐다보며 젊은 날을 보냈던 것이다. 아,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10년 동안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던 내 머릿속의 컴퓨터를 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 소식에 조금 둔감해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방구석의 책더미 속에서 몇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여전히 가장 좋은 정보들은 책 속에 있었다. 인터넷에서 며칠을 찾아도 다 찾지 못할 정보들이 책 한 권 한 권마다 오롯이 들어있었다. 정보 이상의 것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하여 인터넷에 쏟던 시간은 온전히 독서를 위한 시간으로 전환되었다. 강박적으로 마우스를 눌러대던 손가락은 잘 마른 책장을 사각사각 소리내어 넘기고 있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e메일로 원고를 전송할 것이며 필요한 자료들을 검색하러 인터넷에 접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 것이다. 삶의 기쁨은 네트워크의 바깥에서 내 육체를 움직여 얻어낼 것이다.

그 유한한 육체를 통해 오직 단 한 번 경험되는, 결코 복제되지 아니할 문화적 경험들을 좇을 것이다. 이것은 복고취향도 호사취미도 아니다. 단지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