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텐베르크성경아래:직지심경
한국과 독일이 금속활자본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정을 놓고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고려 ‘직지심경’(원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이용해 1455년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경’.
이들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올라있고, 등록 여부가 27일부터 29일까지 충북 청주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기록유산 자문위원회 심사에서 판가름난다.
두 기록물 모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을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세계기록유산 반열에 오를 것인지, 한국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기록문화재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직지심경이 현존 최고라는 것은 이미 세계 학계도 공인했지만 아직도 많은 서양인들은 구텐베르크 성경만을 기억하고 있다.
직지심경은 14세기 고려 고승 백운이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법어를 초록한 것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구텐베르크성경은 현재 43개국에 48세트가 남아 있고 이번 후보작은 독일 니더작센대 도서관 소장본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들은 두 인쇄물이 인류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모두 등록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현재 구텐베르크 성경은 안정권이고 직지심경은 확률이 50% 정도. 직지심경의 경우 변수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변수는 직지심경의 소유국과 신청국(제작국)이 다르다는 점. 직지심경은 조선조말 프랑스인에 의해 반출되어 현재 프랑스 소유다. 제작국과 소유국이 다른 것을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신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청자인 청주시는 1998년에도 직지심경의 세계기록유산 지정을 신청하려 했으나 소유자와 신청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접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신청서를 내려던 청주시는 프랑스와 공동으로 신청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에 따라 프랑스측과 협의했지만 프랑스가 동의하지 않았다. 청주시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신청을 강행해 올해 일단 신청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것이 심사에 장애가 되거나, 나중에 프랑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럴 경우 외규장각도서 반환문제에 이어 프랑스와의 문화재 마찰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서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변수는 직지심경의 내용. 한 문화재 전문가는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록에 있어 세계 최초, 세계 최고(最古)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실제 내용이 중요한데 직지심경은 내용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주 고인쇄박물관측은 “금속활자는 지난 밀레니엄 기간 중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직지심경은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마지막 변수는 구텐베르크 성경에만 익숙한 서양인들의 편견. 그러나 유네스코 관계자는 “이번 회의가 직지심경의 본고장 청주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그 같은 편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각국의 기록물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심사는 비공개 토론으로 진행되며 최종 결정은 29일 내려질 예정이다.
kplee@donga.com
◆ 세계기록 유산이란
유네스코는 인류가 길이 기억하고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선정해 세계기록유산 (Memory of the World)으로 지정하고 있다. 현재 26개국 47건의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것으로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지정됐다.
이번 청주회의에는 한국의 ‘승정원일기’ ‘직지심경’을 비롯해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경’, 노르웨이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 자필 원고, 헝가리의 중세지도 등 22개국 39건의 기록물이 후보로 올라 있다.
한국 후보 기록물의 경우, ‘승정원일기’는 등록이 유력하다. 인조1년 1623년 3월부터 1910년 8월29일까지 왕명을 담당하던 승정원에서 처리한 여러 사건, 행정사무, 의례적 사항 등을 매일 기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