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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동아사이언스] '와일드 빌' 탈옥 소문은 사실아니다

입력 | 2001-06-20 18:51:00


얼마 전 35년 동안 해외 도피 생활을 하던 영국의 열차강도가 고향의 흑맥주 맛을 다시 맛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자수했다고 합니다. 보도를 접하고는 전설이 깨어지는 듯한 느낌에 왠지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또 다른 탈옥수 전설이 과학자들에 의해 사라졌다고 합니다.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국의 전설적 총잡이 ‘와일드 빌’(Wild Bill·사진)은 23명을 살해한 혐의로 1878년 텍사스 주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시 와일드 빌이 친구가 만든 특수 죄수복 덕에 죽지 않고 살아나 루이지애나 주 또는 남아메리카 어딘가에 도망쳐 이름을 숨긴 채 살았던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와일드 빌의 전설은 1986년 손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과학자에게 조사를 의뢰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조사를 맡은 과학자는 와일드 빌의 관을 열면 당연히 뼈는 간 데 없고 돌멩이들만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역시 전설이 전설로 남기를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흉악범과 같이 묻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묘지관리인이 묘비를 치워버려 관을 찾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 후 이 과학자는 묘지 곳곳에 원격 감지 장치를 설치하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당시의 묘지 사진과 대조해가면서 와일드 빌의 무덤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찾은 한 무덤에서 발견한 유골 DNA를 와일드 빌 여동생의 증손녀 DNA와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 지난주 15년 간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결국 와일드 빌은 전설처럼 교수형에서 살아 나오지 못하고 123년 동안 그 무덤에 조용히 묻혀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유골의 목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있었는데 이것 역시 감옥에서 가톨릭에 귀의했다는 기록과도 맞아떨어졌다고 합니다.

조사를 담당한 과학자는 자신이 와일드 빌의 손자이길 바랬던 의뢰자에게 연구결과를 납득시키는 데 끝내 실패했다고 합니다. 과학도 전설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어쩌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puse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