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각각 자기 특유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국가들도 제각기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과연 한국은 세계인의 뇌리에 어떤 이미지로 부각되어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 민족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기를 좋아해 왔다. 실제로 19세기 말엽에 일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동양의 은둔 왕국’이었고, 이것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와 그리 멀지 않은 이미지였다.
그 후 우리나라는 국가 이미지 운운할 자격조차 없는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고, 세계인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1945년 광복 이후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의 1950년대 이미지는 6·25의 처절했던 전쟁상과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 흰눈 덮인 길을 재촉하는 긴 피란행렬, 폐허로 변한 도심의 전쟁고아와 걸인들, 구두닦이와 넝마주이, 춥고 배고프고 가난한 나라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세계 속의 한국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세계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한국상이 부각되게 되었다.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낸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높은 성취의욕이 두드러지는 새로운 국가 이미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국가 이미지는 가발과 합판 그리고 온갖 봉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밤낮 없이 누비는 지칠 줄 모르는 젊은 수출 역군들, 중동 산유국 지도층을 탄복하게 한 밤샘작업으로 공기를 단축하는 한국의 근로자들, 모래사장의 조선소 건설과 대형선박 건조를 동시에 해낸 창의적인 기업인과 장인정신을 가진 근로자들이 함께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많은 후발개도국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 나라,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에겐 돈을 빌려주고, 근면한 국민의 손과 머리를 빌려 물건을 만들어 팔기 위한 주문생산 기지로 활용하고, 또 투자하고 싶은 나라가 된 것이다.
게다가 1987년에는 6·29선언이 있었고, 경제발전에 버금가는 민주화와 정치발전을 스스로 해낸 나라로도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이미지는 거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9선언 이후 밀어닥친 민주화의 물결과 함께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홀히 다루어져온 노사 관계의 악화로 격렬한 노사 분쟁과 파업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 이러한 일도 처음에는 과거의 일부 억눌렸던 근로자들의 권리를 되찾고, 노사 관계의 정상화를 향한 일시적인 조정 국면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노사 대립 현상이 오늘에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붉은 머리띠를 한 젊은이들이 두 주먹을 하늘로 치켜올리고 구호를 외치며 연좌 데모하는 것이 민족해방이나 침략자 타파 목표가 아닌 노조활동이라는 데 놀라는 외국사람도 물론 많다. 더욱이 화염병과 경찰 최루탄으로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근로자들이 전투복 차림의 경찰에게 몽둥이와 쇠파이프로 치고 덤비는 것을 보며 한국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람은 더 많다. 이들의 마음속에 강성노조의 나라 이미지가 굳어질까 걱정된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각기 자기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경을 무시하고 넘나드는 세계 각국 기업을 최대한 유치해 자국 근로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마련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기술 습득의 기회를 제공하려 하는 것이다.
노조활동을 통해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유지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노조활동이 노사간 대화와 적법절차를 무시한 파업과 폭력시위 우선으로 흐르는 것은 노조원 스스로의 일자리를 외국으로 몰아내려는 자해 행위나 같은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강성노조 활동으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대다수 근로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건전한 노사 관계 정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