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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남찬순/베트남의 쌀

입력 | 2001-06-21 18:38:00


요즈음 베트남의 농촌풍경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다. 들에는 모심기가 한창이다. 4, 5명씩 대열을 이뤄 모를 심다가 가끔 허리를 펴기 위해 일어서는 농부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해질 무렵 소를 풀어놓고 저희들끼리 어울려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한가히 풀을 뜯는 소들, 그리고 저녁 노을의 풍광도 이맘때쯤 우리 농촌을 연상시킨다.

▷베트남은 3모작을 하는 나라이지만 해마다 식량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유경작이 허용된 이후부터 쌀 생산이 급격히 증가, 지금은 1년에 500만t이나 남아돌아 오히려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베트남 정부는 우리의 대북(對北)지원용 쌀을 수입해 달라고 요청한 모양이다. 하지만 공정한 입찰절차에 따라 쌀을 사겠다던 우리 정부는 한마디 말도 없이 태국산 쌀을 수입해 갔다. 북한측이 내부적으로 태국산 쌀을 주문한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베트남 측은 크게 실망했다는 뒷얘기다.

▷작년 베트남과 우리의 무역규모는 약 20억달러. 그 중 우리의 수출이 17억달러를 차지한다. 베트남으로서는 당연히 무역역조 시정을 요구할 만하다. 쌀을 사달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400여개 한국기업들에 대한 평판도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베트남 노사 분규의 절반은 한국기업들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아직은 우리에 대한 베트남측의 인식이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불만요소들이 자꾸 쌓이면 곤란하다.

▷베트남과 우리는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기막힌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베트남사람들은 대부분 그 같은 과거사를 꺼내지 않고 있다. 1992년 12월 양국수교 때도 그랬고 1998년 12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도 두 나라 정상은 “과거를 덮어두고 양국이 미래지향적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자”고 약속했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 가는 우리의 투자대상국이다. 두 나라가 성숙한 동반자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지키고 해야 할 일들이 무엇보다 많은 것 같다.

chans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