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 큰일났수. 건망증이 심해서.”
저녁 느지막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는 추모씨(45).
“아침에 출근하려고 차를 몰고 20분쯤 달리는데 책상 위에 서류봉투를 두고 온 게 생각나는 거야. 서둘러 집에 와보니 냄비 타는 냄새가 나더라고. 국 끓이던 것을 그대로 두고 나왔던 거야.”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치는 언니.
“나도 새벽에 물을 끓여서 커피메이커에 붓는데 자꾸 맹물만 나오더라. 봤더니 원두커피 분말 넣는 걸 깜빡 잊은 거야.”
“우리 애들 아빠도 ‘환상적’이었어. 얼마 전에 일찍 들어왔기에 머리 염색을 해 주었거든. 잠깐 내가 장보러 갔다 온 사이에 혼자 바람쐬러 나갔다 오더니만 하얀 티셔츠에 갈색 추상화 한 폭을 그리고 왔더군. 염색한 사실을 잊고 나갔다 소나기를 만났던 거지.”
“오늘 우리 집 양반도 완전히 엽기였어. 아침에 신문을 집어와 읽더니만 ‘왜 이렇게 안 보이지, 안경 바꿀 때가 됐나” 하더라고. 근데 가만 보니 선글라스를 쓰고서 투덜대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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