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무어
카메라가 마치 육식동물처럼 천천히 뉴욕의 전경을 비춘다. 화면에는 예쁜 글씨로 배우들과 촬영 스태프의 이름이 차례로 뜨고, 배경에는 죽은 아기를 위한 자장가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여자의 노랫소리가 깔린다(1968년 개봉 영화 ‘로즈메리 베이비’의 한 장면).
“옛날에는 이 장면이 정말 무서웠어요.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 소리 같은데 정말로 소름이 끼치거든요. 저 거리를 좀 보세요. 아주 정상적인데도 왠지 무섭지 않아요?”
영화 ‘한니발’에 출연했던 여배우 줄리안 무어가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악마가 나오는 영화가 너무 좋아요.”
뉴욕의 아파트에서 남편 가이와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로즈메리(미아 패로)는 어느 날 저녁에 옆집의 괴상한 부부가 가져다준 초콜릿 무스를 먹고 악마에게 강간당하는 꿈을 꾼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웃사람들은 모두 악마 숭배자들이었고, 그녀가 꾼 꿈은 현실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로즈메리가 옆방에서 이루어지는 전화통화 내용을 엿듣는 장면이다.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카메라의 시야 바로 바깥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이 통화를 통해 관객들은 배우인 가이가 옆집 부부와 대화를 나눈 후 원하던 배역을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원래 그 역을 맡기로 했던 배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장님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 장면에서 정말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요.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보일 것 같은데, 절대 보이질 않죠.”
무어가 말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때 원작인 소설을 먼저 읽었던 사람들은 감독이 로즈메리가 낳은 아기의 모습을 화면에서 보여줄 것인지 매우 궁금해했었다.
감독은 아기를 보여주지 않는 편을 택했다. 아기의 눈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만을 남긴 채 영화는 로즈메리가 우는 아기를 안고 어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맨 처음 나왔던 여자의 노랫소리는 바로 로즈메리가 아기에게 불러주는 노래였다.
“이 영화에는 쉽게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모든 것이 모호하죠. 과연 로즈메리는 어떻게 할까요. 어쨌든 저 아이의 엄마인데 말이에요.”
영화를 다 보고 난 무어의 마지막 말이었다.
(http://www.nytimes.com/2001/06/15/arts/15WATC.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