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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최고위원 인터뷰 전문-2]

입력 | 2001-06-22 17:12:00


구조적으로 고립된 대통령

김근태 최고위원의 주장은 최고위원 회의가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지원할 틀을 갖추고 당대표와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보좌해서 정책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논의의 틀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관계기관대책회의가 그런 기능을 했지만 정치적 불신이 컸던 만큼 공식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런 기능을 수행해야 정국을 돌파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청와대 집무실을 정부종합청사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잭 웰치 GE 회장은 ‘CEO는 보고서에 파묻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했어요. CEO는 생산라인이나 소비자 한가운데서 그 사람들의 느낌과 호흡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야당 총재를 할 때에는 늘 현장 한가운데 있었는데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집무실이 경호실에 의해 차단되고 비서실과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요.

지금의 청와대 집무실은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구조입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체취를 느낄 수 없습니다.

논리적 정합성은 가질지 몰라도 호흡을 함께할 수는 없죠. 그래서 비서들이나 행정부 사람들이 일하는 한가운데 대통령 집무실을 둬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백악관은 르윈스키 사건에서 보듯이 대통령 집무실 문을 열면 바로 비서실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청와대 집무실 위치는 차단되고 격리된 구조입니다.”

청와대의 이런 구조에서는 대통령과 대화할 수 있는 비서실장이나 몇몇 측근만 접근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정풍파가 주장하는 인적 쇄신의 이면을 들춰보면 대통령의 귀와 눈을 독점하는 측근들에 대한 불만이 짙게 깔려 있다.

김중권 당대표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는 동교동계 사람들이 불편해했고 동교동계인 한광옥씨가 비서실장이 된 뒤에는 비동교동계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

최근 민주당 워크숍이 끝난 후 당정쇄신을 요구하는 당발전위원회의 건의문을 전달하려는 자리에 한광옥 실장을 배제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초재선 의원들의 성명발표도 대통령의 언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봅니까.

“그런 측면을 부정할 수 없죠. 그런데 정풍파들의 요구는 옳지만 절차는 잘못됐다고 봅니다. 당대표에게 의원총회를 요구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했어야 하는데 언론에 먼저 흘린 것은 국민들에게 직소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마지막에 취해야 할 비상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파들은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국민도 두렵고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는 것도 어려우니까 자신들의 입장을 언론에 던진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도 괴로웠을 겁니다. 대통령은 젊은 피를 수혈한다는 차원에서 초재선 의원들을 발탁해 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은 평소 대통령과 자주 만날 수 있었고 따라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풍 파동의 주역들은 어떻게 보면 대통령이 총애하는 사람들이지요.”

정풍파는 대통령이 아끼던 그룹

─김민석 의원은 민주당 워크숍에서 절차를 중시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동교동계로부터 박수를 받았는데….

“김민석 의원은 쇄신과 질서를 동시에 주장했습니다. 동교동계에서 주장했으면 설득력이 없었을 텐데 김민석 의원이 주장하니까 설득력이 있었던 거죠.

동교동에서 박수를 치니까 마치 동교동 사주를 받은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동교동계가 정치적 입문 과정에서 386세대를 도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정균환 단장도 사실은 소장파들을 도왔습니다. 지난 12월 파동 때 소장파들을 감싼 것도 정균환 단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균환 단장이 어렵게 대통령 면담 약속까지 받아냈는데 소장파들이 틀어버리니까 입장이 곤란했겠죠.

사실 당의 중진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대통령께 문제를 갖고 가는 것 자체가 창피스러운 일 아닙니까.” 김최고위원이 보기에 이번 정풍 파동이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민주당의 구세대와 대통령이 총애하는 신세대간의 갈등으로 비친 것일까.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외로움’이 엿보였다. 김최고위원은 민주당 내 재야 출신의 리더격이지만 지난 총선 공천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는 국민회의 출범 때 반대했죠. 그리고 직언을 하니까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 동안 한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당직이나 행정직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가지고 언론플레이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언론에 직소하기보다는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주장인 것 같은데….

“제가 대통령께 드릴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개혁이 성공해야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개혁이 중단되면 정권재창출은 물론 나라가 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가서는 개혁이 안 됩니다.”

─개혁을 계속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개혁을 중단하면 나라가 망가지고 추진하면 이 정권의 지지기반이 축소되는 것 같은데, 이 위기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집권층의 자기희생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야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어려운 경제생활에서 감내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미래의 전망과 희망을 불어넣음으로써 떠나가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개혁, 사회개혁 같은 일을 벌이기에는 힘이 부족해요.

그러나 4대 개혁 같은 것은 지금 추진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추진력이 떨어지고 있으니까 당 안팎에서 개혁세력들을 다시 결집해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지요.”

─개혁정당으로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인가요.

“당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당을 대표해야 합니다. 6월 임시국회에서 개혁법안과 경제 민생법안을 통과시킬 때 여야간에 충돌없이 토론과 표결 규칙을 지켜서 정말 노력하는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자기당 국회의장의 의사봉을 봉쇄하고 선별투표하는 것은 당이나 의원들의 자부심을 손상시킵니다.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민주당이 절차를 지키는 정당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개혁세력을 활용해야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이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지 않습니까.

“조기전당대회론은 예정대로 전당대회가 열리는 내년 1월에 후보를 확정해 지자제 선거에 대비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집권세력은 안정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가 없어요. 1월로 집권은 끝나는 거죠. 그래서는 월드컵 축제를 준비할 수도 없어요.

유력한 후보군을 떠올려서 지자제 선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전력을 다하게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월드컵 직후에 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대권과 당권은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제왕적 총재 제도를 극복해야 하는데 1년에 두 번 전당대회를 할 수는 없고 7,8월경 한 번에 전당대회를 해서 동시에 뽑아야죠. 그래야 민주적 정당이 될 수 있죠.

나눠서 하자는 주장은 먼저 당권을 잡은 후에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을 대권후보로 만들겠다는 거죠. 그것은 반대합니다.”

─대권과 당권 후보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동시 선거시에는 대권과 당권 도전 후보가 서로 보완적이어야 하겠지요. 당권이 안정적이면 대권후보는 개혁적이라든가 아니면 거꾸로 말입니다. 한국 정치상황에서는 대권후보가 모든 권한을 쥐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되면 선거에 피해를 끼친다고 보는데, 만약 여당이 채택하면 야당도 고려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겨날 겁니다. 정당의 민주화와 제왕적 총재의 극복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압력이 될 것이고 권위주의 정치를 끝내는 출발이 되는 셈이죠.”

─민주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난해 12월 청와대 회동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국을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안이 있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첫째, 여소야대 정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정치적 이해는 한나라당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으므로 부분적으로 공유하되 경제에 관해서는 한나라당과 타협해야 합니다.

둘째, 당시는 자민련과 공조가 깨졌으므로 다시 공조를 회복하는 겁니다. 이 경우 여소야대는 벗어날 수 있지만 부담은 있습니다.

셋째, 정계개편을 하는 방안입니다. 그러나 우리 당의 주도로는 정계개편이 되지 않습니다. DJ당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개혁파나 영남파가 주도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할 만한 정치력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민주당의 중심 세력과 개혁그룹이 결합하는 방식이 옳다고 봅니다. 대통령께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에 대해 왜 당에서는 가만히 있느냐고 안타까워하시는데 개혁세력들이 책임있는 자리에 앉으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김최고위원의 주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제대로 사용해보지 않은 ‘개혁세력’을 마지막으로 활용해보라는 호소로 들렸다. ─준비된 개혁세력이 있습니까. “당 안팎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그렇지 대통령께서 개혁정책으로 정면돌파하겠다고 결심하면 다시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