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판교 남단녹지 지역을 저밀도의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방침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개발안에 찬성하는 측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아니면서도 그에 준하여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아온 이 지역을 더 이상 묶어둘 수 없고 어차피 건축을 허용한다면 계획도시로 개발해야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서울시 등 반대측은 판교신도시 개발이 수도권 집중을 심화하며 서울 부근에 극심한 교통난을 유발하고 생태환경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찬성/개발할 바엔 계획도시가 최선▼
건설교통부의 판교 개발방안에 대해 당사자인 경기도와 성남시, 그리고 서울시와 환경단체 등이 모두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난개발을 유발하고, 주택공급 효과가 미미하며, 서울시의 교통혼잡이 가중되고, 신도시 부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등의 반대의견으로 논쟁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판교를 계획도시로 개발하지 않아도 내년부터 건축제한이 풀리면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몰려들어 난개발을 초래하고 서울 방향으로의 교통량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를 막기 위해 개발제한구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6년 동안이나 개발행위를 제한받아온 이 지역에 추가로 제한을 연장한다면 위헌소지는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 과도한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다가구주택 등을 감안할 때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은 96%를 넘고, 모든 사람이 집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주택 부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국내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주택보급률 산정방식에 대한 시비를 떠나서라도 아직 수도권에는 단칸방 거주자가 67만 가구, 다가구주택 거주자가 85만 가구나 된다.
여기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전세금과, 낡은 불량주택들을 감안한다면 주택 공급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가 넘은 선진국에서도 주택 공급은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상당기간 여론을 수렴한 결과 여러 가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판교 개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장기간 유지돼 온 건축 제한의 불합리성과 이로 인한 주민피해, 이미 상위 계획상에 주거지로 개발키로 계획되어 있는 점, 그리고 수도권 주택공급 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반대의견까지 수렴하여 저밀도의 개발로 방향을 결정한 이상, 개발 여부에 대한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어떻게 하면 지난날의 신도시보다 더욱 진일보한 신도시로 만들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분당, 일산신도시 등의 사례를 보면 개발 과정에서의 경험 부족과 성급한 사업시행으로 인해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입주가 완료된 이후 주민들의 주거 만족도는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주변 연결도로의 교통체증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으나 이는 신도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주변 준농림지역 등에서 일어나는 난개발과 도시기반시설의 무임승차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판교신도시 개발은 서울에 편중된 기능을 재배치하여 수도권의 균형개발과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구시가지와 분당신시가지로 급조된 성남시의 도시 공간구조를 체계적으로 재편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 개발이익을 활용해 교통시설을 확충함으로써 주변의 용인 난개발지역의 교통문제를 다소나마 완화해 문제를 발생시키는 신도시가 아니라 발생된 문제를 치유하는 신도시로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김명섭(한국토지공사 수도권계획도시 기획단장)
▼반대/교통난 극심…생태환경도 파괴▼
바로 몇 달 전 김대중 대통령은 건설교통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수도권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오히려 인구 6만명을 수용하는 판교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정반대의 발표가 나왔다. 6월 말까지 개발방안을 확정짓겠다고 밀어붙이는 건교부의 모습을 보면 노태우 정부가 200만가구 주택건설사업으로 불러온 혼란이 연상된다.
건교부가 주장하는 사업추진 배경은 수십년 동안 남단녹지로 묶여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온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고, 계획적 신도시로 개발하는 것이 난개발보다는 바람직하며, 수도권의 주택공급 확대가 불가피하고, 건설업을 진작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전체 국토를 경쟁력 있고 지속 가능하게 관리해야 할 정책당국의 관점에서 취할 선택은 아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크고 구조적인 문제를 만들지 않는 정책대안을 선택해야 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판교지역을 주거단지로 개발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판교신도시 문제는 광역도시계획에 의해 결정할 문제인데, 건교부는 광역도시계획 과정을 무시하고 개발을 서두름으로써 합리적 정책과정을 스스로 위반하고 있다. 계획개발이라고 호도하는 택지개발사업이 대규모 난개발의 표본임을 직시해야 한다. 개발이 꼭 필요하다면 선 계획, 후 개발의 원칙을 솔선수범하여 광역도시계획부터 착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둘째, 수도권 과대성장을 억제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해온 역대정권의 국토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수도권 성장 억제를 천명하면서, 오히려 반대효과가 큰 정책을 시행한다면 정권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건축 민원이나 재산권 같은 문제는 사안별로 대처해야 한다. 지구 어디에도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국민의 절반 정도가 모여 사는 나라는 없다.
셋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교통난이 엄청나게 심화될 것이다. 인구 40만명의 분당이 개발된 이후 출퇴근 교통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여기에 판교지역에 6만명의 상주인구가 추가된다면 교통지옥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개략적으로 계산해도 왕복 18차로의 도로와 지하철이 새로 건설되어야 한다. 더욱이 서울 강남지역과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강북지역에까지 교통시설을 증설해야 한다. 이를 위한 투자 소요액은 수조원에 이를 것이다. 세계의 유수한 신도시가 대도시로부터 최소한 40㎞ 이상 떨어져 건설된 것은 이 때문이다.
넷째, 서울의 허파기능을 담당하는 남단녹지에 구멍이 뚫려 생태환경이 무너지게 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의 허파기능을 위해 판교 분당 일대 2000만평의 수림지역을 남단녹지로 지정하고 그린벨트에 준하여 특별관리하도록 지시했다. 그 중 분당 개발로 600만평이 훼손되었지만 남은 남단녹지라도 꼭 지켜야 한다.
임강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