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랜스젠더 하리수씨를 다룬 프로그램이 여러개 방영되었다. 유달리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억압이 강고한 한국 사회에서 성전환자 연예인이 지상파 방송에 등장한 것은 ‘사회적 성(性)’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 계기가 됐다.
이제는 페미니스트들의 금언처럼 되어버린,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은 시몬느 드 보봐르의 주저(主著) ‘제2의 성’(하서출판사·2000년)을 관통하는 선언이다.
보봐르는 이 책을 통해, 남성은 여성이 주체인 자신을 인정해주는 타자로만 기능해주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사회적 활동은 남성이 다 할테니 여자들은 남자가 하는 활동에 박수쳐주고 남자를 천재로 받들고 남자가 위안을 바랄 때 옆에서 다독여달라고 남자들이 요구했다는 얘기다.
이 책은 수 천 년을 이어온 남녀 성별 분업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은 사회적, 여성은 정서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사실은 만들어진 것이며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주장은 수천의 페미니즘의 모태가 되었다.
성에 대한 통찰이라면 그 자신 동성애자였던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나남출판·1997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푸코는 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전복적인 힘을 갖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본래의 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환상이 우리가 진정 전복적일 수 있는 힘을 빼앗는다고 지적한다.
‘성을 긍정하는 것이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믿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반대로 전반적인 성적 욕망의 장치가 진전되어온 맥락을 따르는 것이다. 성적 욕망의 장치에 대한 반격의 거점은 성-욕망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이어야 한다.’ 이같은 진술은 성에 대한 논의가 빠질 수 있는 함정과 탈출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가장 급진적인 성의 모습은 어슐러 르 귄의 판타지 소설 ‘어둠의 왼손’(시공사·1995년)에 표현된 게센이라는 상상의 행성일 것이다. 해롤드 블룸이나 프레드릭 제임슨 같은 저명한 비평가들도 찬사를 바친 이 작품에 나오는 외계의 인간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별이 없다.
이 행성의 모든 인간은 생식이 가능한 생리주기와 그렇지 않은 생리주기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수태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임신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성별 분업이란 상상도 할 수 없고, 이 사람들의 눈에는 남성-여성으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영구적 장애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성(gender)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작가는 성에 대해 무한히 열려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송경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