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TV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한국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하나 있다.
수사물이나 드라마 등 ‘픽션’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촬영장소로 등장하는 도시나 명승지, 심지어 호텔이나 여관도 실명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도시나 명승지의 이름은 보통 자막으로 표기해주며 사기업은 간판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20일 밤 방영된 TV도쿄의 한 수사물에는 ‘야마구치(山口)시’ ‘이와쿠니(岩國)시’ ‘긴타이쿄(金帶橋)’ 등 도시나 명승지를 알려주는 자막이 6번 등장했다. 한국으로 치면 형사가 출동하는 장소에 따라 ‘인천공항’ ‘부산 해운대’ ‘순천시’ ‘남해대교’ 등이 자막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시청자들은 ‘뭔가 뒷거래가 있지 않을까’ 당장 의심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특정 시설이나 지역이 알려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일본에서 호텔이나 여관 이름, 개인이 경영하는 리조트타운 등이 TV 프로그램에 등장했다고 해서 시청자가 항의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마음에 들면 ‘다음 휴가 때 나도 한번 가봐야지’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할 뿐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지자체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동안에는 TV방송사나 영화사의 촬영협조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왔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시도한다.
그래서 등장한 조직이 필름커미션(FC)이다. 지자체들은 이곳에 전담직원을 두고 TV나 영화사의 요청이 들어오면 복잡한 공공시설 사용허가수속, 로케장소 교섭, 숙박시설 예약, 엑스트라 동원 등을 대행해 준다. 방송국이나 영화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첫 FC는 지난해 2월에 등장한 ‘오사카(大阪) 로케이션 서비스 협의회’다. 곧 발족될 ‘전국 FC연락협의회’에는 50개의 지자체와 단체가 가맹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최근 그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생긴 요코하마(橫濱)FC는 5월말 현재 영화 50건, TV광고 120건, TV프로 60건의 제작에 도움을 줬다. 도쿄도 4월에 ‘도쿄 로케이션 박스’를 만들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지사는 “긴자(銀座)에서 차량추적장면을 찍어도 좋다”며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자체가 이렇게 촬영 유치를 하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지자체의 관광지 등을 선전해 외부인을 끌어 모으려는 뜻에서다. 실제로 영화나 TV에 등장한 마을이나 거리는 바로 유명 관광지가 된다. 작은 것에도 감동을 잘 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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