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잠시 주춤하던 수도권 인구증가는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다. 수도권에는 전국 제조업체의 55%, 인구의 46.3%, 예금의 68%, 문화활동의 절반 이상이 집중돼 있고, 인천의 인구는 전통적 3위 도시였던 대구를 넘어섰다. 이대로 가면 2011년에는 인구의 과반수가 수도권에 살게 되고 지방의 공동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대도시권의 인구증가는 198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침체돼가던 대도시권의 재활성화를 반갑게 받아들이지만 한국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세계 어느 대도시권보다도 교통 환경 용수 땅값 주거여건 등의 문제가 심각해 산업경쟁력과 생활환경 수준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밀혼잡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기업이 수도권에 몰려드는 악순환의 핵심에는 서울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 수도권에 모든 분야의 핵심 엘리트가 모여 있고 한국사회가 인맥과 연줄로 움직이기 때문에 수도권의 구심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정치 행정 산업 학술 교육 언론 연예 스포츠 법률 등 각 분야 핵심 엘리트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연줄사회에서 누가 수도권을 떠나려 할 것인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 균형발전의 첫걸음이다. 정부는 기업 본사나 금융기관, 고등교육기관 이전을 제시하지만 정부 권력이 이전하지 않으면서 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넌센스다. 이윤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업에 충분한 인센티브 없이 정치적 압력으로 입지를 강요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에 역행하는 일이다. 정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의 균형발전 뿐만 아니라 수도권을 뉴욕, 로스앤젤레스 메트로폴리탄처럼 산업 문화 학문 분야에 특화된 대도시권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이기도 하다. 수도권은 역량을 산업 문화 네트워크로 재편해, 특정 산업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은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통령제 정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과 행정부 각 부처들이 조율해야 할 일이 많은데 지금은 정부기관들이 혼잡한 수도권에 흩어져 있어 정책결정의 협조성이 매우 낮다. 워싱턴 런던 도쿄 타이페이의 집약적인 정부 배치를 보면 우리의 부처 입지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알 수 있다.
통일 이후를 내다보더라도 행정수도 이전은 필수이다. 통일 후 개성 등으로 천도한다는 구상은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기도 벅찰 뿐더러 중앙정부의 누구도 사회자본과 기반시설이 없는 북한에 가서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 집중문제는 사회 전체의 시급한 결단을 필요로 한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과 지방의 분열과 대립이 심화할 뿐 아니라, 지방에는 침체와 공동화가, 수도권에는 과밀과 혼잡이 촉진돼 국가경쟁력과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다.
권오혁(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