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사무소 대표 회견
이동학씨 가족이 26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北京)사무소에 전격 진입한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외교부를 비롯해 남북한 대사관 등 베이징 외교가가 발칵 뒤집혔다.
이씨 가족은 UNHCR 관계자를 만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한국으로 가지 못하면 사무소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호소했다고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文國韓) 국장이 전했다. 문 국장은 또 “이들이 한때 온 몸을 줄로 엮고 만약 북한으로 송환되면 모두 자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운동본부측에 알려왔다.
이씨 가족은 이날 오전 10시경 3, 4명으로 나뉘어 중국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타위안(塔園) 외교관 사무실 2층에 있는 UNHCR 사무소에 기습적으로 뛰어들었다. UNHCR 사무소는 중국 공안원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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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국장과 이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던 일본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의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기자가 이들과 동행했다. 이씨 가족은 23일 베이징에 도착해 건물 주위를 사전 답사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11시경 뒤늦게 이씨 가족의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대사관 직원과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 등 외신기자 40명이 몰려들었지만 사무소측은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 가족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자 UNHCR측도 크게 당황했다. 콜린 미첼 대표는 진입 사실을 알고도 한동안 집무실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직원들은 이씨측에게 “대표가 자리에 없다”고 둘러대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첼 대표는 11시경 이씨 가족과 면담에 들어갔다.
곧이어 UNHCR는 외신기자들을 위해 1층 복도에 영문으로 표기된 이씨 가족의 가계도를 부착했으며 길수군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UNHCR 사무소로 통하는 2층 입구에는 건물 경비원들이 배치돼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 건물 1층에는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가 입주해 있다. 또 보스니아 앙골라(8층) 모잠비크(7층) 등 각국 대표부 사무실이 이 건물에 들어 있고 바로 옆 건물에도 뉴질랜드 볼리비아 등의 대사관이 몰려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다음달 13일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회의를 앞두고 있어 중국으로서는 이씨 일가족 문제를 서둘러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때문인지 중국 공안은 사무소 근처에 감시 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씨 가족이 UNHCR에 망명을 신청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렌크(RENK)’는 간사이(關西)대 이영화(李英和) 교수가 91년 북한을 방문한 직후 북한사회의 폐쇄성 고발을 위해 93년 일본 오사카(大阪)에 세운 시민단체. 렌크는 ‘북한주민을 구하자(REscue North Korean people)’는 말의 약자다.
렌크는 97년부터 중국 옌볜(延邊)에 비밀거점을 두고 본격적인 탈북자 지원에 나선 뒤 발행 잡지를 통해 북한사회의 실상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탈북자 지원에 나서 이들에 대한 한국 및 제3국 망명을 적극 추진해왔다.
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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