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 투∼ 원∼ 점화”
눈을 멀게 할 듯한 강한 섬광과 함께 굉음이 지축을 울렸다. 로켓엔진은 길이 50m의 연소터널 속으로 거대한 불기둥을 내뿜기 시작했다. 25일 밤 8시 22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진이 독자 개발한 액체연료 추진엔진의 위력이 대덕 연소성능시험장에서 본사 취재진에게 처음 공개된 순간이었다.
▶ 국내 최초로 개발돼 내년 4월 과학로켓을 쏘아올리는 데 쓰일 액체연료 추진엔진.
이날 아침부터 시작된 성능시험 준비작업은 긴장과 진땀의 연속이었다. 엔진을 점화하려면 수백 기압의 높은 압력으로 산화제인 영하 180℃ 액체산소와 액체연료인 등유를 주입해야 하는 데 준비작업이 순탄치 않아 시험이 계속 지연됐다. 또 점화 직전 연료주입 밸브에서 연료가 새나와 카운트다운이 중단되기도 했다.
긴급 수리작업 뒤 저녁 늦게나 시험에 착수했으나 연소는 16초만에 중단됐다. 기술진을 괴롭혀온 연소의 불안정성이 이 날도 다시 나타난 것. 불안정 연소로 엔진이 흔들려 애초 목표한 30초까지 시험을 못하고 엔진 재사용을위해‘응급샷다운’을했다.
하지만 16초 연소는 1년 전 첫 시험 때 0.2초부터 걸음마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큰 진전이다. 이에 앞서 6일 새벽에 진행된 17차 연소시험에서는 20초 연소 기록을 깨 연구원들이 축배를 들기도 했다.
내년 4월 지상 100㎞ 우주로 쏘아올릴 과학로켓(KSR-3)의 상상도(위). 국내 최초로 개발돼 시험 중인 액체연료 추진엔진에서 화염이 분사되고 있다.
이 액체엔진이 내년 4월 발사할 과학로켓(KSR-Ш)을 지상 100㎞ 상공까지 쏘아 올리려면 60초 동안 연소해야 한다.
이 연구소 조광래 우주발사체사업단장은 “엔진은 최고 6000℃의 열에 노출되므로 시험할 때마다 새로운 엔진을 만들고 문제점을 보완한다”며 “지금까지 만든 엔진이 13개이고, 내년 발사까지 27개의 엔진을 만들 계획이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땀흘려 엔진과 동체를 조립 시험하는 현장은 연구소라기보다 마치 커다란 공장 같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많은 미사일과 과학로켓을 개발했지만, 모두 고체연료를 추진제로 썼다. 액체엔진의 개발은 이번이 처음이다.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은 고체연료를 이용하는 로켓보다 추진력이 강하고, 점화 뒤에도 연료 주입량을 조절해 원하는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우주 개발에 필수적이다. 아폴로 달착륙선을 쏘아 올린 새턴5호나 우주왕복선, 러시아가 보유한 대부분의 대륙간탄도탄, 북한이 쏜 대포동 위성발사체도 액체엔진을 지녔다.
이번에 개발한 액체추진엔진은 일단 내년 4월에 길이 13.3m, 무게 5.6t의 과학로켓을 쏘아 올리게 된다. KSR-Ш과 액체추진엔진의 개발에는 825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되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엔진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켜 연구소는 2005년 9월에는 길이 30m 무게 100t짜리 위성발사체(KSLV-1)를 발사할 예정이다. 무려 10층 높이의 발사체인 셈이다. 이 때가 되면 독자 개발한 발사체로 100㎏짜리 우리 위성을 쏘아 올림으로써 우리나라도 마침내 우주 개발국가 대열에 진입하게 된다.
과학기술부는 2년 전 북한 광명성 1호의 충격 속에 애초 2010년으로 계획됐던 위성발사 시기를 2005년으로 앞당겼다. 항공우주연구원은 벌써 거대한 KSLV-1 로켓 조립 건물을 완성했다.
이 연구소 이대성 추진기관연구부장은 “액체엔진은 군사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기술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기술을 주려하지 않아 100% 자력 개발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 로켓 개발팀 127명 가운데 해외에서 로켓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다. 선진국의 로켓 개발회사는 절대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에 쏘아올릴 위성발사체는 순수 ‘김치 기술’만으로는 개발이 어려워 러시아로부터 기술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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