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아산 이사회 정몽헌 회장이 거느리고 있던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가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는 이달말까지 계열분리작업이 마무리된다.
정 회장이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대상선은 과도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현대중공업 등 계열사 지분을 팔고 있어 현대그룹은 말 그대로 ‘소(小)그룹’으로 재편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계열이었던 현대석유화학은 무리한 차입경영으로 유동성위기가 발생하면서 현대그룹이 아예 경영권을 포기한 상태.
현대증권 현대투신증권 등 금융계열사는 미국 AIG그룹과의 매각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조만간 주인이 바뀌게 된다.
▽현대건설〓채권단의 2조9000억원 자금지원이 마무리단계에 오면서 일단 재무구조는 건실해졌고 영업상황도 호전되고 있다. 컨설팅기관인 ADL은 “영화회계법인의 실사결과 3855억원의 추가부실이 발견됐지만 자금지원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연말 차입금 규모는 2조330억원, 부채비율은 300%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자금지원을 둘러싸고 채권단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채권단은 2금융권의 참여를 전제로 금융기관별 출자전환 금액을 확정했으나 교보생명 등 일부 금융기관은 여전히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또 하나은행이 채권단협의회에서 발을 빼겠다고 나서 채권단의 공조체제에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현재 각 금융기관의 자금지원 규모는 보유채권액을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은행은 신용대출금을 일부 탕감하고서라도 회수해 손을 떼겠다는 입장이다.
▽하이닉스반도체〓해외주식예탁증서(DR) 12억5000만달러 발행을 계기로 단기유동성 위기는 넘겼다. 채권단의 전환사채(CB) 1조원 인수도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어 당분간 현금이 부족할 염려는 없어졌다.
그러나 하이닉스 회생의 최대관건인 반도체 가격은 계속 폭락하고 있다. 재정주간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SSB)는 64메가D램 가격이 2.56달러 이상을 유지한다는 전제조건하에 회생계획을 만들었지만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하이닉스의 생산원가는 64메가D램 2.7달러, 128메가D램 5.4달러인데 공급가격은 각각 1.56달러와 3.2달러로 손해가 나고 있다. 현물가격은 64메가D램은 1달러, 128메가D램은 2달러까지 폭락한 상태.
따라서 내년에도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대석유화학〓98년 충남 서산 제2공장을 무리하게 증설하는 과정에서 1조7000억원의 부채가 지게 됐고 이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채권단은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계열사의 완전감자와 경영권 포기를 전제로 자금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대산업개발(9.5%)이 감자결의에 반대하고 있어 난관에 부닥쳤다. 채권단은 감자동의안을 받아내는 것을 전제로 출자전환 및 신규자금지원계획을 마련할 계획이어서 대 주주가 은행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금지원이 이뤄진 후에는 보다 좋은 조건으로 덴마크 보레알리스나 호남석유화학과 지분매각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올해 산업은행이 신규회사채 인수를 통해 단기부채 2000억원을 장기부채로 바꿔줬다. 대신 현대상선은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중공업 현대증권 등 3개사 지분을 매각해 약 6000억∼7000억원을 마련해 부채를 줄일 계획이다.
또 8월말까지 구조조정 및 부채감축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금강산관광사업은 이미 철수하기로 했고 현대아산 지분(40%)도 조만간 정리할 것으로 예상돼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가 아니라 독립 해운회사로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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