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사적 3호) 근처에 초고층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문화재 경관을 해친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원시는 수원 팔달구 우만동 수원구치소와 수원교도소가 경기 여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이곳 3만여평에 29∼32층짜리 아파트 18개동 신축을 추진 중이다.
문화재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이 곳이 화성에서 800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여기에 30층짜리 아파트를 짓는 것은 ‘문화재 파괴행위’라며 반대하고 있다.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화성 주변의 경관이 훼손될 것이 분명하며 이는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같은 경관 훼손으로 인해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사적 등 국가 지정 문화재의 500m 이내에 건축행위를 할 때는 자치단체장이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해당 부지는 화성으로부터 800m 떨어진 곳이어서 일단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은 법 조항과 관계 없이 화성 주변을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최근 ‘주변 경관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히 고려할 것을 요망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경기도와 수원시에 보냈다.
국제기념물유적회의(ICOMOS) 한국위원회도 “법률적인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도 초고층 아파트 신축은 화성의 경관을 훼손할 것이 분명하므로 아파트 건설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수원환경운동센터 역시 “아파트 건설계획에 앞서 문화적 학술적 검토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원시가 단순히 법 조항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문화재를 주변 환경과 함께 보호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해 보다 전향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원시는 아파트 건축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수원시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건설에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고층 아파트 건축이 강행될 경우 유네스코는 수원 화성을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유네스코는 일단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라 하더라도 보존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을 ‘위험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유네스코가 1997년 수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때도 수원시에 주변 환경에 대한 각별한 보존 조치를 권고했고 수원시도 주변 환경 보존을 약속한 바 있다. 즉 경관 보호를 전제로 한 조건부 등록이었던 셈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허권 문화부장은 “화성이 초고층 아파트 건축으로 인해 위험문화유산으로 전락한다면 우리나라 전체의 불명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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