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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수군 가족 운명은]유엔 "난민자격 충분" 中 "인정못해"

입력 | 2001-06-27 18:52:00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北京) 사무소에 난민 지위를 요청한 탈북 가족 이동학씨 일가의 신병처리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신중한 처리를 요청한 가운데 UNHCR측과 이들의 신병 처리 방안에 관해 논의 중이다. 국제 관례에 따르면 UNHCR가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더라도 최종 판단은 주재국에 달려 있다. 중국은 북한과의 특수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문제 해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UNHCR의 견해

론 레드몽 UNHCR 베이징 사무소 수석대변인은 26일 “이씨 일가족은 난민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면서 “이들을 돕기 위해 모든 관계 당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씨 일가족의 제3국 망명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으나 한국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UNHCR의 이 같은 태도는 그간 탈북자를 대해온 태도에 비해 한 걸음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간 UNHCR는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라 ‘난민은 종교나 정치적 견해 등의 이유로 박해의 공포 속에서 모국을 떠나 국가 밖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왔으며 이씨 일가처럼 주로 경제적인 이유의 탈북자는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장길수군처럼 북한의 식량난에 따른 비참할 실정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 북한 당국의 미움을 받고 있는 사람은 별개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UNHCR 역시 26일 이들의 난민 지위 인정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나타냈으며 이날 제네바 주재 중국 대표부 관계자를 불러 이씨 일가족의 신병처리 문제를 협의했다.

▽중국의 태도

중국 외교부는 26일 “중국과 북한간에는 난민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해 일단 이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에 대해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온 사람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는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면 현재 중국 내 탈북자가 3만∼5만명(10만∼20만명이란 추산도 있음)으로 추정되고 있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쇄 탈북 사태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또다른 고민은 2008년 하계 올림픽을 베이징에 유치하는 문제와 관련한 것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가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베이징 개최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가뜩이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에 이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면 개최지를 결정하는 7월 13일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올림픽위원회의에 결정적인 악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 송환의 내부 방침을 정하더라도 이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송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국제사회 여론이나 한국 정부의 요청을 고려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3국 추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예상되는 북한과의 마찰이 중국 정부의 고민거리다.

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