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당황스럽고 안쓰러웠던 최근의 삽화 한 토막. 이사를 한 날 저녁 무렵 이삿짐을 정리하는 분들의 식사를 주문하려고 근처 상가의 조그만 음식점에 갔다. 머리카락이 성긴 중년 남자가 배달용 음식에 랩을 씌우고 있었다. 첫눈에 우리 은행에 다니다 ‘희망퇴직’한 후배임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그의 표정과 당분간 동료들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던 그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는 한눈 팔지 않고 은행 일에만 열중해 온 모범 직원이었다. 6·25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國難)이라고까지 일컬었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실직 당한 많은 직장인에 비하면 그는 그래도 작은 음식점이라도 인수했으니 형편이 낫다면 낫다고 해야 하리라.
IMF 관리체제로 시작된 금융구조개혁이 4년차를 맞고 있다. 많은 동료들이 곁을 떠났고 학교 동창 명부의 직업란엔 ‘전 ○○은행 지점장’ 등의 문구가 많다.
사실 나는 일선 점포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3년 전 제일은행에서 만든 명예퇴직 관련 스토리인 ‘눈물의 비디오’나 연일 행내 게시판에 올랐던 떠나는 동료들의 고별사조차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지내는 날이 많다. 새로 시작한 일감 부탁과 거래처 소개를 위해 찾아오는 옛 동료들을 대할 때마다 쓸쓸하고 미안하긴 하지만 현실은 또 어쩔 수 없는 실제 상황이라며 애써 변명을 하곤 한다.
경황없이 지나가 버린 지난 3년의 시간들. 일선 영업점 현장에서 보면 그동안 ‘사라진 간판들’ 외에도 많은 여건과 관행의 변화가 있었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중시되며 예금유치 섭외가 대출세일로 바뀌었고,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기업 평가로 담보제일주의가 퇴색했다. 고객들은 금융기관의 파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신입행원을 채용하지 않아 영업점에서 행원급 인력이 ‘천연기념물’로 불릴 정도로 드물어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이겠다.
이른바 글로벌 경쟁시대에 밀려드는 외국 금융회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우리가 갈 길은 멀다. 양해각서(MOU)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자기자본이익률(ROE)·총자산이익률(ROA) 등 각종 지표면에서도 여전히 개혁의 과정에 있다. 우리 금융 산업이 전진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경제 여건이 어려운 데다 재활용이 쉽지 않은 은행원 업무의 특성으로 볼 때 앞으로도 상당 기간 재취업하지 못한 40, 50대 전직 동료 은행원들의 아픔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퇴출’이라는 생소한 용어와 더불어 입었던 숱한 상처가 아물려면 아직은 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고 싶다. 이런 사람들 때문이다. 최근 우리 지점의 거래처에 취직한 모 퇴출은행 과장 출신. 입사를 위한 면접 때 그는 “이 회사가 잘 되는 일이라면 거래처의 구두바닥이라도 핥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2년 전에 우리 은행을 떠나 자격증을 6개나 딴 나의 입행 동기생은 “은행 바깥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재취업을 희망하는 남은 나의 친구들과 아끼는 후배들, 그리고 재취업의 기회를 찾고 있는 모든 퇴직 은행원에게 좋은 일터가 하루속히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권택명(외환은행 부평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