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85년 2월 초 서울의 어느 총선 유세장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육성녹음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자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였던 당시 한 야당 후보가 들려준 육성녹음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하는 함성이 유세장을 흔들었고, 흥분한 청중들은 곧 거리로 쏟아져 나가 ‘독재타도’ ‘광주사태 진상규명’ 등을 외치며 행진을 했다. 아직 초년병이었던 기자는 시위대로 변한 청중들의 분노에서 언로(言路)를 억누르고 있던 군사독재의 얼음장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시위대는 동아일보 기자를 ‘응원군’으로 여겼고, 동아일보 취재차량을 보면 엄지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그해 겨울, 유세장의 열기를 가장 정직하게 전한 신문은 동아일보였기 때문이다.
총선 직전 김 대통령이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 수 있었던 것도, 막혔던 언로가 트이면서 분출하기 시작한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김 대통령 또한 독재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동아일보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전한다.
그러나 방송은 그렇지 않았다. 방송사의 편파보도 문제가 총선기간 내내 정치쟁점이 됐고, 이는 이듬해인 86년 봄 범국민적으로 확산된 KBS 시청료납부거부운동 및 뉴스안보기운동의 동인이 됐다. 김 대통령이 당시 고문으로 있던 신민당도 이 운동에 적극 동참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16년이 지난 오늘 기자는 뭔가 뒤죽박죽이 된 상황에 혼란을 느낀다. 언론개혁의 주 대상이 하필 신문이고 그 중 하나가 동아일보인가, 방송이 신문의 과거를 들추면서 개혁을 운위할 자격이 있는가 등등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언론사 세무조사만 해도 그렇다. ‘정당한 법집행’이라는 정부 여당의 설명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지만 갈수록 세무조사의 정치적 동기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세정현실과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 후 집권여당의 도를 넘는 대언론 공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세법을 제대로 적용하면 현재보다 2, 3배는 더 세금을 걷을 수 있다’는 조세전문가들의 말처럼 불성실 신고를 전제로 제정된 현행 세법은 과세당국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따라서 과세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세무조사를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란 거의 없다. 이례적으로 조사인력이 대거 투입돼 장기간에 걸쳐 구석구석 파헤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인지는 누구보다도 과세당국자들이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국세청은 세무조사 결과를 마치 ‘전리품’처럼 공개하고, 집권여당은 아직 ‘혐의’ 수준에 불과한 세무조사 결과를 가지고 일부 언론을 싸잡아 파렴치집단으로 모는 것엔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됐든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당장 언론사와 언론종사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 보다는 향후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미칠 악영향이 훨씬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권력과 언론과의 균형이 일그러진다면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비판 기능은 또다시 실종되거나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 폐해는 다음 정권에서도 지속될 것이고, 현 집권세력이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들도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다 심사숙고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거 일부 언론의 그릇된 행태에 대한 불만 때문에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언론개혁의 파국적 결말을 결코 외면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싶다.
“언론은 권력의 응원단일 수 없다.” 이는 MBC 김중배(金重培) 사장이 KBS 시청료납부거부운동 및 뉴스안보기운동이 한창이던 86년 4월5일 동아일보에 쓴 칼럼의 첫머리다. 김 사장은 또 “정치적 설득과 동원도 언론의 회로에 의존하지 않고는 이뤄지지 않는다”며 “언론 정책은 모든 정책”이라고 썼다.
그 언론엔 방송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또한 본의 아니게, 그리고 결과적으로 ‘권력의 응원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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