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32호인 ‘해인사 대장경판’의 판각장소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일고 있다.
인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선원사터(사적 제259호) 1만여평에 대한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서 ‘태생지 논쟁’이 벌어지자 문화재전문가와 인천지역 향토사학자들이 ‘발끈’하고 있다.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은 29일 오후 1시 반 인천종합문예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이 논쟁의 핵심 전문가 10여명을 초청해 ‘고려 팔만대장경과 강화도’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천혜봉 전 성균관대 전 교수의 기조발제와 4명의 전문가 주제발표에 이어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해인사에 보관중인 고려 팔만대장경의 판각장소와 관련해 “강화도 ‘대장도감’의 총괄 지휘 아래 강화와 경남 남해의 ‘분사(分司) 대장도감’에서 16년에 걸쳐 제작됐다”는 것이 그동안의 대세.
강화도에서 32년간 대몽 항쟁을 벌였던 1236∼1251년 고려팔만대장경이 완성돼 선원사에 보관돼 오다 조선시대 태조 7년인 1398년 해인사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설에 반기를 들고 ‘판각장소 논쟁’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이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상국 연구실장.
박 실장은 최근 “팔만대장경은 강화 선원사가 아닌 남해에서 전량 판각된 뒤 강화도로 옮겨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동국이상국집’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옛 문헌에 고려 팔만대장경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들은 남아 있으나 조성과정이나 장소 등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어 이같은 논란이 손쉽게 종지부를 찍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때 대 사찰로 유명했던 선원사(禪源寺)는 조선시대 이후 폐찰돼 600년간 황무지로 방치돼오다 96년부터 동국대 박물관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심포지엄 참석자의 발표문중 일부를 소개한다.
▽천혜봉 전 성균관대 교수의 ‘고려 팔만대장경 조판과 강화도’〓무신정권의 실세였던 최이(崔怡)에 의해 강화에 대장도감이 설치됐고 남해 등지에서 후박나무 등 원목을 강화로 운송해왔다. 초창기 강화 대장도감에서 대장경을 조판했고 남해의 분사 대장도감에서 조판작업이 시작된 것은 최이의 처남 정안이 남해로 낙향한 이후인 1241년 말경부터다.
▽박상국 연구실장의 ‘고려대장경 판각과 판각장소 문제’〓고려대장경판 가운데 ‘분사 대장도감’에서 판각한 판이 72종 504권에 달한다. 대장도감과 분사 대장도감은 멀리 떨어진 장소라고 볼 수 없고 경판에 새겨진 각수에서도 같은 장소임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정안이 남해에 퇴거하여 대장경의 절반 정도를 간행했다’는 문헌 기록은 대장경 판각사업이 남해에서 행해졌음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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