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기 없는 얼굴로 코트를 누비며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여자 프로농구 선수들이라고 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실제로 체육관이 아닌 장소에서 유니폼 대신 근사한 정장을 차려 입은 이들을 만나면 총각 기자로서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용모에 신경을 쓰면 훈련을 게을리하기 쉽다는 이유로 사령탑에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김화순 조문주 성정아 최경희 신기화 등 당시를 대표한 간판 스타들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는지, 당시의 신문 사진 속에서 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히 남성적인(?) 느낌의 쇼트 컷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같은 코트 밖의 불문율이 많이 없어진 게 사실. 취재를 위해 체육관을 찾으면 울긋불긋한 머리색깔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지난 겨울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한빛은행 한새의 주장 박순양(25) 선수의 경우, 투지 넘치는 플레이 스타일에 붉게 염색한 머리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코트에 무시무시한 ‘칼바람’도 불고 있다. 리그와 리그 사이의 공백을 틈타 쌍꺼풀 수술을 받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수술 사실이 소문나지 않게 쉬쉬하던 모습은 이제는 먼 옛날 얘기.
수술을 받아야 하니 이틀만 훈련을 쉬게 해달라고 코칭스태프에게 당당히 말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팀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주무가 몇 명의 선수들을 모은 뒤 단체로 병원을 찾아 수술대에 줄줄이 눕는 촌극이 벌어질 때도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모 팀은 주무의 지휘 아래 4명의 선수들이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수술해 ‘5명이 모여 농구하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쌍꺼풀 수술까지 팀을 짜서 하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감독들의 반응도 예전과 달라졌다.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흔쾌히 허락해 주고, 때로는 주위에 수소문해 좋은 병원을 소개해 주기까지 한다. 실력과 개성으로 승부하는 프로 세계에서 외모 가꾸기를 위한 그 정도의 투자는 얼마든지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자세다.
신세계 쿨캣의 이문규 감독은 “머리 모양을 통일하는 등 체육관 바깥에서 획일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다루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며 “가만히 지켜보면 외모에서 자기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가꿀 줄 아는 선수들이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잠깐, 글을 쓰다 보니 자그마한 걱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러다 혹시 농구팬들이 경기장에 와 선수들의 플레이는 접어두고 눈 주위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수술 여부를 체크하지는 않을까? 마치 갑작스럽게 날씬해진 개그맨 이영자의 몸매를 많은 여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본 것처럼 말이다. 초여름 더위에 너무나 지쳐버린 기자의 한심한 기우(杞憂)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