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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권기태/탈북자에게도 '햇볕'을

입력 | 2001-06-29 18:33:00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중국 베이징 사무소에서 농성하다 29일 제3국인 싱가포르로 떠난 장길수군(17) 일행 문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추진해온 ‘햇볕 정책’에 가려온 그늘을 다시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정부는 96년 탈북자가 많아지자 베이징 주재 UNHCR에 자금 등을 지원해 베이징 교외에 탈북자 수용시설을 짓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현정부 들어 ‘햇볕 정책’이 시작되면서 이 계획은 흐지부지 됐다. 탈북자 문제는 북한 정권의 가장 아픈 부분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96년 정부의 계획도 현실적 제약이 있었겠지만 중국 내 탈북자가 최대 10만명까지 추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쉽게 포기해도 좋을 사안은 아니었다.

길수군의 경우 지난해 5월 가족의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서 북한 참상을 폭로한 책을 펴냈지만 출간 직후 고조된 ‘6·15 정상회담’ 분위기에 떠밀려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길수군 일행은 생존을 향한 이 같은 몸부림 끝에 최후의 시도로 베이징에서 농성을 감행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길수군이 북한 참상을 알리는 출판물 및 그림 전시 등을 통해 북한에 송환되면 처벌 받을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일행도 북한 정권이 가족 연대 처벌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난민 지위’를 부여받을 여지가 컸다. 정부는 외교문제를 고려해 중국의 이 같은 태도에 끝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최근 중국 내 탈북자가 늘면서 중국 당국은 탈북자가 베트남 몽골 등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내 탈북자는 북한 강제 송환의 공포 속에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다. 제2, 제3의 ‘길수 가족’이 나올 소지가 팽배해 있다.

‘햇볕 정책’은 김정일 체제뿐만 아니라 김정일 체제의 그늘까지도 환하게 비추는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

권기태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