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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생명의 자유, 그 변증법적 실체 '생명의 원리'

입력 | 2001-06-29 18:33:00


◇생명의 원리, 한스 요나스 지음 한정선 옮김 605쪽 2만5000원 아카넷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지시하면서 ‘이것이 생명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생명이란 ‘살아 있음의 성격을 추상한 말’이기 때문에, 일상의 생명현상의 총체를 생명체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가 볼 때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는 분명하지가 않다. 생명의 신비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생명의 본질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 총체적 양상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생명의 영원한 특징인지도 모른다. 생명의 참모습은 오직 ‘복잡한 관계양상으로 표현’될 때에만 올바르게 인식되는 것이기에, 생명현상을 명징하고도 일관된 지식체계로 정리하려는 개별 자연과학의 시도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독일 출신의 철학자인 한스 요나스(1903∼1993)는 이 책에서 모든 존재의 심연에는 언제나 이미 ‘자유를 향한 지향성이 내재해 있다’는 피할 수 없는 가정에 의지하여, ‘자유’는 생명 이해의 실마리라고 대답한다. 그는 생명 현상의 ‘필연적인’ 징후인 물질대사에서 이 실마리를 발견한다. 물질대사는 오직 자유를 획득한 존재에 나타나는 존재론적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나스에게 생명이란 ‘필연의 토대 위에 건축된 자유’의 집이다.

그런데 생명의 자유는 진보, 성장, 확대,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단한 결핍, 부단한 존재 박탈의 위험이기도하다. 자유는 죽어야 하기 때문에 살아 있음을 허용하고, 생명체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필연의 그물망에 가두어 둔다. 그래서 생명의 자유는 변증법적이다.

요나스의 생명철학은 데카르트의 이원론, 실존주의와 유물론,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진화론적 낙관주의, 혹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등 생명에 대한 이론들의 한계를 넘어 생명철학을 심리-물리적인 통합과학 이론으로 제시한다. 이런 야심찬 기획은 상반된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그의 다른 저서인 ‘책임의 원칙’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인간의 이념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는 미래 책임의 윤리학이라는 진보적 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궁극적인 본질에 대한 물음에 직면해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자연-형이상학으로 회귀하는 퇴보적인 노선이다.

이 책은 40년 전(1963)의 영어본 ‘생명의 현상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10년 뒤에 같은 책을 ‘유기체와 자유-철학적 생물학에의 접근’이라는 독일어본으로 출간하였고, 20년 후(1994)에 다시 ‘생명의 원리’로 출간했다.

이 저작은 요나스의 사상 발전과정에 비추어 보면 1979년 출간된 ‘책임의 원칙’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필자 역시 오래 전에 이 책을 구입하여 읽었지만, 낡은 독일어투의 난삽한 문장과 ‘고난도의 형이상학적인 랩소디’ 때문에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흠잡을 데 없는 꼼꼼한 번역과 정성 들여 만든 책을 다시 한번 정독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구승회(동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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