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감동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영화평을 쓰겠다고 자청한 뒤 곧 나는 후회했다.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느낌과 생각을 또박또박 문자로 옮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다. 거진 나았던 손목이 다시 저렸다. 내가 또 사고쳤구나. 좋은 것은, 그게 사람이든 영화든 책이든 분석을 하기 힘든 법이다.
난 내가 싫어하는 영화에 대해선 필요하다면 수십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날카롭게 칼을 갈아 사정없이 난도질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미친듯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냥 이 영화 꼭 보세요. 저, 울었어요. 두번 보고 두번 울었어요, 라고 더듬거릴 수밖에.
이 영화는 잊혀진 쿠바의 음악가들을 발굴해 음반을 제작하고 공연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파리, 텍사스’를 연출한 빔 벤더스 감독이 찍었다. 몇 달 전 신문에서 영화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을 놓쳐버렸다.
그러다 어느날 그 음악을 들었다. 포도주를 몇잔 걸친 뒤에 홍대 앞의 음반가게에서 술친구들과 함께 서서 들었다.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삶의 고통이 배어나는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절규하는 게 아니라 속삭이는 듯 부드러운 쓰라림이었다.
마주 보는 우리의 눈빛이 빛났다. CD를 두장 사서 하나는 그를 주고 하나는 내가 가졌다. 소설을 쓰다 답답해지면,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어지러우면 침실의 서랍장 위에 놓인 CD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다. 리듬에 맞춰 체조도 하고 춤도 추었고 사랑도 꿈꿨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속의 우울을 노래에 실어 털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비디오로 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일요일 밤에 후배와 함께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보았다. 영화가 시작된 지 오분도 되지 않아 이건 혼자 봐야 할 영화인데 괜히 그녀를 불렀구나 싶었다.
난 누가 옆에 있으면, 그가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신경이 쓰여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다. 맛있는 건 혼자 먹고 재미있는 영화는 혼자 본다. 일어나 빙글빙글 돌다 머쓱해 동작 그만 했고, 나오던 눈물이 도로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다 ‘발견되어’ 녹음실에 끌려온 이브라힘 페레(Ibrahim Ferrer)를 소개할 때 나는 전율했다. 늙고 초라하지만 빛나는 얼굴, 그 인간 자체가 작품이었다. 생계를 위해 구두를 닦고 복권을 팔던 칠십노인의 몸 전체에서 소박한 위엄과 우아한 기품이 넘쳤다. “난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 인생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테니까.” 노랫말이 다 그대로 시였다.
죽는 날까지 여자를 사랑하겠다는, 아흔이 넘은 기타리스트 꼼빠이(Compay Segundo)의 고백에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후배가 돌아간 뒤에 다시 비디오를 돌렸다. 몸과 마음을 풀어놓고 본격적으로 울었다. 음악영화이지만 틈틈이 ‘정치적인’ 장면도 삽입되있다. 체 게바라의 포스터가 카리브 해의 시원한 파도와 함께 넘실댄다. 노련한 거장만이 할 수 있는 짜집기일텐데, 쿠바의 전통 타악기 이야기를 하며 아무 관계 없는 감옥을 둘러보는 장면은 눈에 거슬렸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클로즈업 된 ‘혁명은 영원하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그 뒤에 칼 마르크스 호텔의 낡은 간판이 잠깐 비쳤다. Marx의 ‘r’이 어디갔는지 빠져 있었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였을게다. 영원한 건 혁명이 아니라 음악이라고. 예술이라고.
최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