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인조반정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인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1586∼1647)은 당시 정국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고려대 심경호 교수(한문학)는 그의 미공개 문집을 통해 17세기 초 지성계의 이면을 밝히는 연구를 시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심교수가 입수한 자료는 최명길의 집안에 전해지던 미공개 필사본 ‘지천선생유집(遲川先生遺集)’ 권20∼23과 ‘지천선생속집(遲川先生續集)’ 권24.
심교수는 이를 통해 당시 한문 4대가로 칭해지던 ‘월상계택’, 즉 월사 이정귀(月沙 李廷龜), 상촌 신흠(象村 申欽), 계곡 장유(谿谷 張維), 택당 이식(澤堂 李植)과 최명길을 중심으로 한 17세기 지성사의 이면을 분석했다.
심 교수는 이를 담은 논문 ‘17세기초 지성사의 한 단면’을 30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한문학회 하계학술발표회에서 발표했다.
심 교수는 “이번 발굴 자료에는 이들 사이의 사적인 교류 서신이 많아 당시 지식인들이 현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지천선생유집’ 권21 중 ‘월사 이정귀에게 올리는 글(上李月沙廷龜書)’에서는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예송(禮訟)논쟁을 둘러싼 두 사람의 견해차를 볼 수 있다.
이 편지는 1626년 인조의 생모 계운궁이 사망한 뒤 인조가 1년상을 치르느냐 3년상을 치르느냐를 놓고 논의가 분분할 때 이정귀가 3년상을 반대하자 최명길이 이정귀에게 보낸 것이다. 최명길은 이 글에서 인조 반정 직후에 인조의 생부를 정원군으로 높인 것이 이정귀였으니 지금와서 인조의 3년상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이번 발굴 자료를 통해 문장가보다는 정치가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이식의 일화, 당시 이단으로 배척됐던 양명학을 둘러싼 이들의 고민, 수학(數學) 및 노장사상과 관련된 논의 등이 실려 있어 당시 대표적 문인이자 정치의 핵심에 있었던 이들의 교류사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지정 토론자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우응순 연구교수는 “새로운 문헌 연구를 통해 17세기 초반 지성계의 지형도가 온전하게 그려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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