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로드웨이 44번가 ‘머제스틱’ 극장. 이 곳에서는 88년 이후 14년째 비슷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저녁(이하 현지시간) 극장 앞에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만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20∼30%의 뉴요커(New Yorker)를 포함,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1400여 석의 객석은 빈 자리가 없었다.
천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이 작품은 뉴욕에서만 관람객 800여만 명에 4억2500만 달러(약 5525억 원)의 입장 수입을 기록했다. 18개국에서 공연된 전 세계 입장 수입은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에 이른다.
86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은 천재적인 음악 재능에도 불구하고 흉측한 외모 때문에 ‘유령’으로 불리는 한 남성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파리의 한 오페라하우스에 숨어사는 ‘유령’은 재능 있는 신인 크리스틴의 비밀 교사로 노래를 가르치다 사랑에 빠진다. 크리스틴은 ‘유령’의 도움으로 오페라 주역으로 성장하지만 마스크에 가려져 있는 ‘유령’의 실제 얼굴을 본 뒤 겁을 낸다. 크리스틴이 어릴 때 친구로 공연장 후원자로 나타난 라울과 사랑에 빠지자 ‘유령’은 분노에 빠져 공연장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All I Ask of You’ 등 감미로운 음악과 화려한 무대. 거대한 샹들리에가 갑자기 객석으로 뚝 떨어지는가 하면 크리스틴을 태운 유령의 배가 자욱한 안개 사이에서 움직이기도 한다.
샹들리에의 무게는 약 800파운드(약362㎏)에 이른다. 유령의 배 등 모든 무대 장치는 수동 조작이 부분적으로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컴퓨터로 조작된다. 이를 위해 100여명의 스태프가 무대 뒤에서 애쓰고 있다.
공연 다음날인 26일 오후 브로드웨이에 있는 이 작품의 제작사인 ‘RUC’ 사무실에서 하워드 맥길린(유령), 짐 베이처(라울), 리사 브로만(크리스틴) 등 세 주역을 함께 인터뷰했다.
-커튼 콜 때 기립박수가 대단했다. 이 작품이 변함 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공감할 수 있는 애절한 러브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와 유령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팬들을 유혹한다.”(맥길린)
-장기공연으로 힘들텐데.
“그렇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크리스틴의 드레스는 무게가 40파운드(약18㎏)나 나간다. 이 역을 맡는 한국 배우는 비타민을 많이 먹어야 할 것이다.(웃음)”(브로만)
이들 중 맥길린은 ‘거미 여인의 키스’ ‘시크릿 가든’ 등에 출연하며 런던의 웨스트 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17년 간 활동한 베테랑이다. 뉴욕 초연 무대에서의 마이클 크로포드 이후 11대 유령이 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배우들의 생활은 어떤가?
“배우의 95%가 실업 상태다. 한 작품이 막을 내리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레스토랑에서 접시도 닦고 애완견 산책도 시키고(웃음). 모든 프로듀서와 매스컴 관계자들이 브로드웨이 무대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베이처)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우리 말 대사가 가능한 배우들로 캐스팅돼 12월부터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7개월 간 공연된다.
gskim@donga.com
◇브로드웨이 최고 화제작은 토니상 휩쓴 '프로듀서들'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46번가까지 집중돼 있는 뮤지컬 간판들을 통해 뉴욕과 서울의 ‘뮤지컬 시차(時差)’를 살펴봤다.
‘시카고’ ‘카바레’ ‘렌트’ 등 이미 국내에 선보여 낯익은 작품 외에도 ‘록키 호러 쇼’ ‘키스 미, 케이트’ 등 앞으로 공연될 뮤지컬들도 눈에 띠었다.
인기 뮤지컬 ‘라이언 킹’과 공중 곡예를 연상시키는 오프 브로드웨이의 실험극 ‘데 라구아르다’도 국내 기획사들에 의해 공연이 추진되고 있다.
요즘 브로드웨이의 화제작은 ‘오페라의 유령’의 공연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극장의 ‘프로듀서들(The Producers)’.
이 작품은 나단 레인과 매튜 브로데릭이 주연을 맡아 6월3일 발표된 토니상 뮤지컬 부문에서 여우주연상과 리바이벌상을 제외한 12개의 트로피를 독차지했다. 이 작품이 초연이고 여자 주인공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하지만 이 극장 앞은 예상외로 한산했다. 공연에 앞서 이따금 나오는 반환표조차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관객들이 아예 줄을 서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