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이요, ‘목숨걸고 충성’할 만큼 좋은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이 정부 들어 임명됐다가 은퇴한 전직 장관들을 만나면 그만 둔 것이 속시원하다고 말하는 이가 의외로 많다. 장관자리에 더 앉아있고 싶었으나 등 떠밀려 물러나게 되니까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포기했던 ‘신포도’ 같은 얘기들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잘 나왔다고 여길 만큼 큰 고통의 중심에 여당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얘기가 아니다. 민주당에 대해 “수준이 맞질 않아서 같이 일 못할 사람들”이라는 평가는 전현직 장관들 심지어 청와대 직업관리들의 입에서까지 언급되는데, 말한 이들의 신분이 노출될까 걱정돼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사례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이 흥분만 할 일도 아니다.
정부정책을 견제하는 입법부 고유권한에 대한 반작용으로 행정부가 불만을 갖는 것이라면 그건 정치권이 제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이다. 그러나 행정의 원칙이나 정책의 방향이 수준 낮은 정치논리에 의해 덮어지고 왜곡되는 데서 관리들의 불만이 시작됐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로 인한 해악을 국민이 덤터기쓰고 실정의 책임을 행정부가 뒤집어 써야 한다는 점에서 여당의 행태를 그냥 망나니 칼춤정도로 구경만 할 일이 아니다.
기실 태어난 후 줄곧 야당만 하면서 독재정권에 ‘투쟁’하고 정부정책에 ‘투정’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여당이 됐다고 해서 그들의 체질이나 의식수준이 하루아침에 집권당 스타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의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지성파 의원들을 당장 멱살잡이라도 할 듯 윽박지르는 모습에서, 서있는 발판의 높이가 달라 할 말 못하는 관리들을 매도하는 목소리에서 우리는 3년이 더 지나도록 바뀔 줄 모르는 그들의 투쟁성 체질을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
물론 여당 안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균 이상의 지식수준을 가진 인사들도 있을 수 있고 성품이나 판단력에서 존경받을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특별히 정치판의 환경이 그렇게 이성적 존재들에게 유리한 곳인지는 의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제학의 법칙이나 악성세포일수록 활동성이 더 강하다는 의학적 상식이 혹 여당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민주당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전후해 언론을 ‘최후의 독재권력’으로 규정하고 대언론 선전포고에 가까운 발언들을 토해내는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투쟁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살기가 느껴지는 원색적 용어들을 써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지 모른다. 정권을 잡아 정치무대의 주인공이 된 후에도 기어코 타도대상 하나를 만들어 놓고 투쟁의 불을 질러야 직성이 풀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론이 과연 여당의 타도대상이 될 만큼 강한 존재인가. 이 동네 저 동네 공권력에 끌려 다니며 만신창이가 될 만큼 뭇매를 맞고 있는 존재가 언론일 뿐인데. 진정으로 강한 존재는 끌려가는 그 신문을 선택하고 있는 독자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비판적 언론은 늘 독자들이 실어주는 용기 때문에 강하게 보일 뿐이다.
강약은 늘 상대적 개념이다. 그리고 국민은 언론이 어느 때나 약자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 그 엄숙한 국민의 주문이 있었기에 방송들이 ‘땡전뉴스’를 하던 그 서슬 시퍼렇던 시절에도 제대로 된 신문들은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야당에 약자 프리미엄을 주기 위해 온갖 시련을 스스로 택하고 견뎠다. 그로부터 십수년, 집권여당의 핵심이 된 그 시절 그 인물들은 지금 ‘땡전뉴스’ 방송사들과 한편에 서서, 고초의 길을 걸어온 신문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말들을 쏟아내며 모욕을 주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지금부터가 더 볼 만할 것이다. 민주당 뜻대로 혹 ‘최후의 독재권력’은 당분간 당신들에 의해 ‘타도’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은 ‘강한 여당’과 ‘약한 언론’의 모습이 국민의 눈에 투영될지도 모른다. 그 기간이 얼마나 길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여당이 계산하고 소망하는대로 강자와 약자가 서로 위치를 바꿀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 민주당내 강경파의원들은 ‘후회없이’ 기억하기 바란다. 여론이 항상 약자쪽에 서기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규민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