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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스탈린이 보낸 첩보원에 피살"

입력 | 2001-07-02 19:09:00

발터 벤야민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발터 벤야민은 스탈린에 의해 살해당했다.’

20세기 최고의 문학비평가로 손꼽히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이 스탈린의 첩보원에 의해 살해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1930년대 사회주의를 연구해온 저널리스트 스티븐 슈왈츠씨는 최근 미국 학술지 ‘위클리 스탠더드’(www.weeklystandard.com)를 통해 벤야민의 피살설을 제기했다.

베르톨트 브레이트,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노르노 등과 교류했던 벤야민은 독일 태생의 유태인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둔 진보적 예술론을 펼쳤던 사상가.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한 1933년 파리로 망명한 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참여했던 그는 1940년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프랑스 남단의 작은 마을까지 도망쳤지만 스페인 국경인 피레네 산맥이 봉쇄됐다는 ‘소문’을 듣고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한 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슈왈츠는 이런 자살설에 대해 조목조목 의문을 제기한다.

벤야민은 모르핀 과다 투여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검시 결과 시신에서 어떤 약물도 검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신때도 애지중지하며 간직했던 ‘역사철학의 명제’ 초고가 증발해 버렸다는 점을 의문으로 제기한다.

벤야민의 자살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증언자인 핸리 커랜드라는 여인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벤야민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커랜드는 벤야민 사망일인 1940년9월26일 오전 7시경 마을 여관에서 그를 만나 유언이 담긴 쪽지 두장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벤야민이 사망 당일 아침부터 많은 양의 모르핀을 투약한 상태였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벤야민의 사망 시간이 밤 10시이므로 모르핀을 투약하고 14시간이나 지난 뒤에 사망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 벤야민이 아도르노에게 전해달라며 이 여인에게 주었다는 ‘유언 엽서’도 평범한 안부 인사만 적혀있고, 독일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슈왈츠는 주장한다.

그러나 슈왈츠는 벤야민이 스탈린에 의해 피살됐을 것이라는 주장하면서도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벤야민이 죽은 시점이 ‘악마의 협약’이라고 불리는 ‘스탈린-히틀러 협약’(1939년)을 맺고나서 얼마되지 않았을 때라는 정황만을 강조할 뿐이다.

슈왈츠는 “스탈린은 나치즘과 손을 잡으면서 반스탈린주의로 돌아선 비판적인 지식인과 혁명가들을 첩자를 동원해 살해했으며, 이중에 지적인 영향력이 상당했던 벤야민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구혁명론’을 통해 스탈린에 반대했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역시 벤야민이 죽기 한달전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슈왈츠의 이같은 추론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뉴욕타임스 등도 벤야민이 스탈린식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며 슈왈츠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