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하나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둘째를 낳고 나니 이건 사는 게 아니에요.”
A항공사 김모 과장(38·여). 8세와 3세 아이를 둔 맞벌이주부다. 직장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사회생활을 지속하고 싶지만 “둘째를 낳은 뒤부터는 날마다 퇴직을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친가와 시가가 모두 지방에 있어 평소에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는 요즘 첫아이는 학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야 할 시간에 퇴근을 못하는 일이 다반사. 초등학교 1학년인 형이 어린이집에서 동생을 데려와 부모가 퇴근할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20∼35세 여성 경제활동률 급감〓‘일과 가정의 병립’은 직장여성의 상당수가 꿈꾸는 화두.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출산과 육아의 부담 속에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글 싣는 순서▼
上. 남녀차별과 성희롱
中. 모성보호와 육아
下. 대(對) 여성 폭력
5월에 발표된 통계청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여성취업의 장애요인에 대해 여성들은 육아부담(29.3%)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다음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관행 및 제도(28.2%).
출산과 육아 부담이 한국여성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는 세계 여성들의 경제활동률을 연령대별로 비교하면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 20∼35세에 경제활동률이 급격히 낮아지는 ‘M커브’ 현상이 두드러진다. 출산과 육아가 집중되는 시기다. 여성들은 결혼 및 육아부담 때문에 직장을 떠나거나 직장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물론 육아 또는 자아실현의 가치관에 따라 자발적으로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관련법은 선진국 수준〓모성보호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보장하는 법은 △헌법(모성보호) △남녀고용평등법(육아휴직, 직장보육시설) △영유아보육법(보육시설) △국가공무원법(육아휴직 가족간호휴직) △근로기준법(출산휴가 수유시간 생리휴가) 등이다. 국가공무원 규정에도 여성공무원의 출산휴가, 보건휴가, 임신중 검진휴가, 육아시간 등이 보장돼 있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를 통과한 모성보호관련법이 시행되면 육아휴직시 임금 일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실적 어려움〓김엘림 한국여성개발원 수석연구위원은 “법규 준수 실태에 대한 정확한 조사통계도 없는 실정”이라며 “지방 공무원의 경우 대체인력이 부족해 현행 육아휴직 60일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어린이집과 놀이방 등은 2만여개소로 추산된다. 영유아보육법 등에 따라 전국적으로 탁아시설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막상 직장여성들에게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영유아보육서비스 실태분석과 종합대책 수립연구’에서도 놀이방과 어린이집 이용자의 51.8%가 직장에 나가지 않는 전업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 내 보육시설을 설치하도록 돼 있으나 지난해까지 222개(7530명) 사업장만 이를 이행하고 있다.
육아휴직제를 활용하는 맞벌이 여성도 드물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장려금(1인당 15만원, 올해는 20만원)을 타간 업체는 401곳(5인 이상 사업장 31만7266곳의 0.1%)에 불과하다. 대상인원은 고작 2226명이다.
▽여성인력 활용이 국가경쟁력〓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사회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최근 많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 컨설팅사인 매킨지연구소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한국의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54%)을 90%대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매킨지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서비스업과 지식산업 등의 분야에 3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야 한다. 이 가운데 대졸 이상 인력이 채워야 할 전문직이 120만개지만 현 인력배출 구조상 남성인력 전원이 새로운 전문직에 충원돼도 모자란다는 것. 이 자리를 대졸 여성들이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원 절실〓여성단체연합 지은희(池銀姬) 대표는 “교육받은 여성인재를 사장하고 남자만 활용하는 한국이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선진국과 경쟁할 경우 승패는 뻔하다”고 말했다.
정강자(鄭康子) 여성민우회 대표는 “모성보호나 취업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단순히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며 “앞으로 개정된 모성보호 관련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도록 하고 점차 그 비용의 사회분담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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