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북관계나 북미관계를 논의할 때 일본의 대북 정책동향에 좀더 민감해야 한다. 북한이 대남, 대미 정책을 수립할 때 미일, 북일, 한일관계에 대한 북의 인식이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지난해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그러한 남북의 움직임이 북일관계 촉진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정부도 같은 인식이었다. 미일관계에 대한 북의 인식도 북의 대남 정책에 영향을 준다. 사실 일본과 미국간의 협력관계, 상호 배려가 양국 각자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주고 그것은 나아가 북의 대남 정책에 영향을 준다.
부시 행정부가 일본에 부여하는 비중은 크다. 대북 정책을 포함해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양국간의 공조는 강화될 것이다. 일본정부의 주류는 부시 행정부 출범을 환영하였고 미국 신정부의 대북 기본인식과 정책기조에 대체로 동조한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무산된 것에 대하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다. 한국의 햇볕정책 집행 방법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와 우려에 연계되어 있다.
김대통령의 일련의 용기 있는 대일 우호정책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최우선 순위 정책인 햇볕정책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삼가왔다. 한일관계의 절정기였던 오부치 내각시대에도 일본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신중한 것이었다. 김대통령의 호소 설득도 일본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한 김대통령의 자세와 개입을 그의 국내통치 능력의 약화를 상징한다고 일본에서는 보고 있다. 또한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국내의 심각한 갈등도 한국정부의 대북 정책 집행에 대한 일본의 지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정책을 요약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핵개발이나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 및 배치에 반대하며 미군의 억지력 기능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오랫동안 북일관계 개선을 곤란케 한 요인에는 북미간의 핵문제, 남북한간의 갈등 등 외적요인도 있었고, 북의 대포동 발사와 북한 공작선의 일본 영해 침범과 일본측의 추격사건도 장해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북일 양국간의 미해결 난제중의 난제는 소위 일본인 납치사건이다. 어느 일본내각도 강경여론에 눌려 이 문제 해결없는 국교정상화 실현 불가라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북일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든 것은 기본적으로 일본내에 강력한 리더쉽이 부재한 까닭이다. 과거 북일간의 국교정상화 역사를 돌이켜본 결과 필자가 얻은 결론은 북일수교의 실현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리더쉽을 가진 용감한 정치가의 존재 2) 북일 수교문제에 도전해 볼 야심, 이해관계, 의욕, 명분의 존재 3) 정치적 결단을 가능케하는 적절한 정치권력구조와 역학관계의 존재 4) 주요관련 국가들의 적어도 묵시적 동의 5) 북측의 신축성과 협력의 의지 등이다. 7월말의 참의원 선거에서 현 연립정권측이 선전을 한다하더라도 적절한 권력역학 관계가 구축되기는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선순위가 높은 다른 국내외 문제도 많다. 근래 일본 정계와 관계를 휩쓸고 있는 고이즈미 선풍, 마키코 지진 현상이 일본이 필요로 하는 외교정책 결정집행 기능에 어떤 영향을 줄지 불투명하다. 북미수교 같은 커다란 외부적 충격이 발생하여 일본에서 대북관계 조정이 초미의 정치문제화 되지 않으면 일본정부의 의미있는 노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정부는 앞으로도 서둘지 않고 자기의 속도로 자기의 조건을 관철시키면서 북일관계 문제 해결에 임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일본이 경계하는 것은 한국이나 한미의 주도하에 일본이 재정적 부담만 안게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이 갖는 함축성은 북일관계와 미일관계의 동향이 한국의 햇볕정책 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정부는 당면한 미국과의 신뢰구축 문제 외에도 일본과의 대북 관련문제 조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한상선의 영해와 NLL침범에 한국정부와 군부가 보인 대응은 국가안보 문제에 대처하는 김대통령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신뢰도와 평가에 미묘한 영향을 끼칠 것인 만큼 한국의 대미·대일 신뢰와 협력관계 구축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한 것이 되었다.
김영진(金英鎭·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겸 일본 게이오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