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두닦이등 막일…18세에 밤무대 가수로
1952년 충북 보은군 탄부면에서 태어난 나는 열네 살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중국집 배달,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열여덟 살 때 ‘태진아’라는 예명으로 밤무대 가수가 됐다.
1971년 ‘내 마음의 급행열차’라는 노래로 공식 데뷔한 나는 1974년 ‘추억의 푸른 언덕’으로 그 해 연말 MBC, KBS, TBC 등 방송사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 당시 가수는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계 유지가 어려웠다. 결국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나 맨해튼 브로드웨이 46번가에서 좌판 행상을 시작했다. 한인회 이사장의 도움으로 한인타운에서 ‘진아 뷰티’라는 옷가게를 열면서 경제적 기반도 마련했다.
내가 가수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은 ‘88 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나는 서울올림픽 뉴욕후원회 홍보위원으로 개막일 서울 서초동에서 역삼동까지 성화봉송 주자로 뛰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음반 관계자가 70년대의 태진아를 기억하고 음반 취입을 제의한 것이다. 그 해 녹음한 ‘옥경이’가 1989년 10대 가수상을 받으며 나는 멋진 복귀를 했다.
이후 ‘거울도 안보는 여자’ ‘노란 손수건’ ‘미안 미안해’ 등 해마다 발표하는 노래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발표한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쉬운 멜로디에 김동건 김자옥 등 인기 탤런트가 출연한 뮤직 비디오가 화제가 되면서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흥얼거리는 국민 가요가 됐다. 더구나 올해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잘났어 정말’까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나는 ‘서울올림픽 덕분에 성공한 트로트 가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