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달동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겠다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오히려 주거환경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는 기존 근거법을 폐지하고 새로 법률을 만들기로 하는 등 실패를 자인하고 있다.
경기 구리시 수택동 598 일대. 95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되기 전에는 낡은 불량주택 80여 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던 곳. 이후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하수도와 소방도로 등 기반시설이 놓이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 97년부터 45개동에 700가구가 입주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람 살 곳이 못된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3일 오후 사업지구 내 S아파트 1층 김모씨(44) 집. 초인종을 누르자 김씨가 현관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워낙 실내가 어두워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창문 코앞에 아파트가 들어서 바람도 통하지 않아 비온 뒤 눅눅함이 불쾌감을 더했다.
옆동 2층 이랑자씨(30·여) 집도 사방이 다른 아파트로 막혀 환기가 되지 않고 눅눅해 어린 남매는 늘 감기를 끼고 산다.
이씨 집 뒷동 장문욱씨(44)의 침실은 옆동 작은 방과 마주보고 있다. 얼마나 가까운 지 방안에 걸린 달력의 글씨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 장씨는 옷을 갈아입으려면 욕실로 들어가야 한다.
이 일대에서 가장 먼저 들어선 장씨의 아파트는 97년 입주 당시 한강이 보이는 전망좋은 곳이었지만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계속 진행되면서 바짝 붙어 들어선 아파트에 포위됐다.
장씨는 “사생활이 완전히 노출될 뿐만 아니라 범죄나 질병도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한집에 도둑이 들면 쉽게 옆집, 맞은편 집으로 옮겨다닐 수 있어 경비용역회사의 도움을 받는 가구가 많은 것도 이 동네의 특징.
이처럼 ‘개악’이 이뤄진 까닭은 근거법인 ‘도시 저소득주민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임시조치법’이 사업을 추진할 때 주거환경을 위한 건축법의 규제를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 건축법상의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연면적 비율),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건물 바닥면적 비율), 동과 동 사이의 거리, 주차공간 등을 지킬 필요가 없다.
건설교통부는 이 때문에 89년부터 진행된 사업이 수택동처럼 오히려 주거환경을 해치는 일이 많다고 보고 기존 법률을 전면 폐지하고 일부 규제를 부활하는 내용으로 가칭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을 제정키로 했다. 새로운 법률은 빠르면 이달중 입법예고된다.
하지만 이미 전국에서 72개 지구, 1만5000가구를 대상으로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끝났으며 주거환경 개선지구로 지정된 200여 곳은 계속 기존 법의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어 당분간 개악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말에는 대통령의 사업강화 지시가 내려진 후 4조6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어졌고 건교부에는 전담팀이 구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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