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미국 방문 문제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황씨에 대한 미 공화당 일부 의원들의 초청에 대해 정부는 신변안전 보장문제 등을 들어 현재로서는 ‘불가’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기 때문.
정부는 5일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검토했지만 미 정부가 신변안전을 공식 보장하지 않는 한 방미가 어렵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황씨의 방미에 난색을 보이는 것은 대략 세 가지 배경에서다.
우선 남북관계가 오랜 소강상태에서 벗어나 조만간 당국간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방미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황씨가 방미기간 중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할 경우 남북대화는 물론 북-미대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고 이럴 경우 북측이 그 책임을 남한 당국에 떠넘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황씨의 방미문제는 미국 국내정치가 한미관계 및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어 결과적으로 내정간섭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황씨 초청문제는 미국내 일부 보수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며 “이문제로 미국내에서도 정쟁의 양상을 보이는 데 우리가 이에 동조한다면 미국 국내정치가 한반도의 화해·협력정책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올수있다”고우려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의 불편한 심기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정부내에는 97년 8월 장승길 전 이집트주재 북한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미국은 한국측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데 대해 아직 불만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특히 황씨의 경우 정보기관의 협조 요청이라면 몰라도 정치적 행위가 요구되는 공개 세미나 또는 청문회 등에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은데도 미 공화당측이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또 공화당 의원들과 사설연구단체인 디펜스포럼측이 우리 정부와는 신변안전 보장문제 등을 협의하지 않고 당사자인 황씨에게만 신변보장 의사를 밝힌 것도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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