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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교과서 재수정 불가 파문]정부는 3개월간 뭐 했나

입력 | 2001-07-09 17:08:00


'우리 정부는 그동안 뭘 했기에….'

일본 정부가 9일 역사교과서 왜곡 재수정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나름의 노력은 기울였지만…, 허망하다" 고 말했다.

사실 일본측이 4월3일 역사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한 뒤 정부가 취한 조치는 외관상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중국 북한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정부는 △즉각적인 유감성명 발표(4월3일)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주한일본대사에 대한 강력한 항의(4월4일) △최상룡(崔相龍)주일대사 사실상 소환(4월9∼19일) 등 초강경 조치를 취했다. 또 △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의 출범(4월11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재수정 촉구(〃) 등의 대응조치를 계속 취해 나갔다. 그 결정판이 5월 8일에 나온 35개 항목에 걸친 정부의 재수정 요구안이었다.

한껏 드높았던 정부의 목소리는 이때부터 잦아들었다. 당시 정부 당국자는 "우리측 요구를 충분히 전달한 만큼 잦은 재촉 보다 '무거운 침묵' 이 더욱 효과적"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기대' 였다는 것이 일본측의 재수정 거부로 드러났다.

정부 일각에서는 "벌써 우리의 대응이 새 내각 출범 등 일본의 국내정치적 변수까지 감안해 과연 전략적이고 체계적이었나에 대해선 자성해 봐야 한다" 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당국자는 "정부의 강경 대응이 국내 여론에 밀린 듯한 인상을 줘 효과가 반감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며 "정부 스스로 김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인 '21세기 한일 공동선언' 의 틀을 깨지 않으려고 한계를 그었던 것도 문제" 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력했던 국제기구나 국제회의 및 해외언론 등을 통한 일본 왕따 만들기 전술도 4월9일 유엔 인권위에서의 여론 몰이를 이어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승수(韓昇洙)외교부 장관은 취임후 무려 20여개의 외신과 인터뷰하며 "교과서문제가 우호적인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고 비난했지만 "일본측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 대응책을 제시하진 못해 목소리만 높았다" 는 지적도 있다.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