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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희망이다/한국]부진아 20만명…都農 학력차 극심

입력 | 2001-07-09 18:33:00


초등학교 6년생 K군(12)은 이혼한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나마 아버지는 지방의 공사장에서 일하다보니 보름에 한번 정도 집에 들러 K군에게 용돈을 쥐어준다. 혼자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 저학년 때부터 학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공부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구구단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간단한 사칙연산도 못한다. 한글도 겹받침이나 연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방과 후 보충학습을 받으라고 했지만 몇 번 다니다 그만뒀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향초등학교 일대는 대표적인 달동네. 저소득 계층이 밀집된 곳으로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십만원씩 한다는 과외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난향초등학교는 K군과 같이 열악한 가정형편에 직면한 학생이 많아 학습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이 낮고 편부 편모 맞벌이 부모가 많아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30여명의 학습부진아를 위해 퇴직 교원과 교원 대기발령자 등 3명을 강사로 채용, 방과 후 2시간씩 보충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학습부진아 강사인 안정숙씨는 “학습부진아는 집에서 공부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4, 5학년 때부터 배우는 내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저학년 때 한번 학습결손이 생기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3부 학력격차 줄이자-
1. 미국의 실태
2. 미국의 해소노력
3. 한국의 현주소
4. 약자를 위한 배려
5. 한국의 장애인교육

이 학교 김완기 교장은 “학기말이 되면 학습부진아의 실력이 많이 좋아지는데 방학이 끝나면 학습부진아가 다시 늘어난다”며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파악한 초중고교 학습부진아는 20만명. 학업성취도에 미달하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진급 또는 진학하고 있어 갈수록 학습부진의 정도는 커진다. 교육부는 97년부터 ‘기초학력 책임지도제’를 추진하면서 성취도 평가기준 등을 마련하고 시도교육청별로 방과후, 주말, 방학기간 등을 통해 학습부진아를 지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은 전무한 상태다.

시도교육청별로 비용을 자체 마련하고 있어 시도별로 차이가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3월 현재 초등학교 3학년∼고교 1학년 과정의 기초학습 부진 학생이 초등학생 4778명, 중학생 2만6091명, 고교생 1만9064명 등 5만명이라고 보고 54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초등학교는 방과후 하루 2시간씩 강사를 초빙해 특별교육을 시킨다. 강사는 수업료로 월 50만원 정도를 받는다.

국내 초중고생의 학업성취도는 체계적으로 조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중학교 3학년, 고교 2학년 7400명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 한문 사회 등 5개 과목에 걸쳐 학업성취도를 평가한 것이 처음이었다.

평가원은 학생들을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 등 4단계로 분류했다. 학습부진아인 기초미달 중학생은 과목별로 1.8∼8.2%, 고교생은 2.4∼13%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다.

대도시와 농어촌 읍면도시의 학력성취도의 격차는 컸다. 고교의 경우 수학은 서울이 100점 만점에 51.9점, 광역시가 46.2점, 중소도시가 56.8점, 읍면지역이 33.0점이었다. 읍면지역은 우수 학생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교육 여건이 다른 지역보다 열악해 가장 점수가 낮았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국내에 학력 격차는 없다. 학업성취도 실태가 알려지면 계층간 위화감이 생긴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부 등 교육 관련 기관이 자세한 통계자료를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기초학력을 넘는 학생이 98.6%’라는 식의 ‘맹탕’ 자료만 내놓고 있다. 시도교육청을 통해 조사한 학습부진아의 숫자도 엉터리라며 부정할 정도다.

교육부 김원찬 평가관리과장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없고 평준화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지역별 학력 격차가 드러날 경우 부작용이 우려돼 자세한 자료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력 격차는 올 1학기 대학의 수시모집에서도 입증됐다. 지방보다는 대도시, 특히 수도권 학생들이 어려운 심층면접에서 내신성적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당락을 뒤집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다. 대학들은 학력 격차를 반영하는 고교등급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교육의 형평성과 과외에 관한 실증분석’에 따르면 2000학년도 서울시내 25개 구별 일반계 고교(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제외) 졸업생(재수생 포함)의 서울대 진학률은 강남구가 100명 중 2.7명, 서초구가 2.5명으로 가장 높았으나 강북의 한 구는 0.25명으로 강남구의 10분의 1도 안됐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3개대를 합치면 구별로 5배나 차이가 난다. 강남구는 지역 졸업생 100명중 8명, 서초구 7.7명이며 가장 적은 구는 1.8명에 불과했다.

고려대 박도순 교수(교육학)는 “성취도 결과가 공개되면 학교가 서열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사실 학부모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라며 “학업성취도를 공개하고 그에 걸맞은 대책을 세워 지역간 계층간 학력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서울 신강초등교 민영규교사▼

“간단한 사칙연산을 못하고 한글을 못 읽는 기초학력 부진아들이 전국적으로는 20만명이 된다고 하지만 교사하기 나름입니다. 관심을 갖고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서울 용강초등학교 근무 당시 학교와 가정을 연계한 학습으로 ‘기초학력 부진아 지도 우수사례’로 선정된 민영규 교사(서울 신강초등학교 교무부장)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습부진아를 구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군은 지난해 3학년 초 진단평가에서 국어 55점, 수학 60점으로 학습부진아 판정을 받았다. 글을 대충 읽지만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 간단한 계산도 제대로 못했다. 아버지는 중기기사, 어머니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느라 부모는 아들의 공부를 돌봐주지 못했다. J군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됐다.

민교사는 우선 J군과 매일 한번 이상 잠깐이라도 이야기할 기회를 갖고 함께 장난을 치는 등 정서적인 교감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J군의 부모와 매달 1회 이상 학습지도에 대해 상의하고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줬습니다. 매일 1시간씩 과제를 내주고 부모에게 공부한 내용과 시간을 알림장에 적어 보내도록 했습니다.”

3음절 이상 낱말을 쓰고 하루 20분 이상 동화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지도했다. 바둑알 가르기와 모으기를 통해 숫자 개념을 가르쳤고 두자릿수 사칙연산, 구구단외우기, 1000까지 수읽기 등을 반복했다.

한 학기가 지나자 읽기가 크게 향상됐고 계산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학교 수학경시대회 점수가 5월 24점, 7월 56점, 10월 68점, 12월 84점으로 뛰어올랐다. 기초학력 진단평가에서 국어 95점, 수학 95점으로 목표치에 접근했다.

J군은 성격이 다소 거칠고 결석이 잦은 편이었으나 공부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성격도 차분해지는 등 태도도 완전히 변했다.

민 교사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 부진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고학년이 되면 학습 결손이 누적돼 지도하기 더 어렵고 아이도 자포자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학 과학 성취도 국제 비교 해보니▼

지난해 12월 발표된 제3차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비교반복연구(TIMSS-R)가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학생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최신 자료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가 98년 9월∼99년 6월 38개 회원국의 중학교 2학년생(만 13세) 18만여명을 대상으로 수학 과학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했으며 한국에선 150개교 6285명이 평가를 받았다.

결론부터 보면 한국의 중학생들은 4년마다 실시되는 이 평가에서 수학 과학실력이 각각 세계 2, 5위로 상위권이었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성취도와 성적 상승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의 경우 한국은 95년 3위에서 2위로 한 단계 올라섰다. 95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은 2위를 했었기 때문에 이들이 99년 중학교 2학년이 돼 시험을 치렀다고 보면 순위의 변동은 없다. 싱가포르가 연속 1위를 지켰고 일본은 2위에서 4위로 떨어졌다. 아시아 국가들은 캐나다(7위) 미국(12위) 영국(13위)보다는 앞섰다. 99년 처음 참가한 대만이 3위를 차지했으나 95년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 대상에서 빠진 것을 감안하면 그 이하 국가들은 순위가 한 단계씩 더 내려간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뭔가 심상찮은 조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적 상승폭이 한국은 7점인 반면 홍콩 25점, 싱가포르 14점, 일본 12점, 네덜란드 11점으로 경쟁국에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의 경우 수학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 중학교 2학년생의 순위는 4위로 변동이 없지만 처음 참가해 1위를 한 대만을 포함하면 5위로 한 단계 밀렸다. 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95년에는 세계 1위였다. 당시 2위인 일본보다 무려 23점이나 높은 576점을 받았으나 99년 5위로 떨어지면서 27점이 하락했다. 10위였던 싱가포르는 44점이나 올랐다.

경쟁국 학생들은 점수 상승폭이 컸으나 우리나라는 순위도 떨어지고 성취도 상승이 크게 둔화됐다는 의미다.

수학 과학에 대한 자신감에서 한국 학생들은 각각 32위, 21위로 하위권이다. 수학 호감도는 38위로 꼴찌, 과학은 22위로 역시 하위권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초등학교에서는 실험실습을 열심히 하는 반면 중학교부터 칠판에 의존한 주입식 교육을 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과학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