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의 行爲를 規制(규제)하는 것으로 法律과 禮法(예법)이 있다. 전자가 마치 얼음장 같이 매몰차다면 후자는 그래도 人情이 파고들 여유가 있는 편이다. 교통법규를 어기면 당장 制裁(제재)가 따르지만 어른에게 恭遜(공손)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해서 잡아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諸子百家(제자백가)에서 흔히 말하는 法家가 전자에 속했다면 儒家(유가)는 후자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통치방식도 크게 차이가 나 法家가 嚴法(엄법)으로 다스렸다면 儒家는 仁義를 바탕으로 禮를 강조했다. 소위 法治와 禮治인 셈이다.
요즘 강조하는 效率(효율)을 따질 때 물론 法家를 당할 수 없다. 秦始皇(진시황)의 예가 좋은 경우다. 戰國七雄(전국칠웅)의 하나로 나머지 6國을 破竹之勢(파죽지세)로 몰아붙인 결과 수백 년간 엄두도 못 냈던 일을 불과 반 년 만에 휩쓸고 統一할 수 있었다. 그는 최초로 法家帝國을 建設한 帝王이었다. 儒家를 바탕으로 했던 여섯 나라는 秋風落葉(추풍낙엽)에 불과했을 뿐이다.
하나, 效率만 强調할 것이 아니었다. 秦나라는 고작 16년 만에 亡하고 만다. 統一의 方策은 될 수 있을지언정 統治의 哲學은 되지 못했던 것이다.
크게 깨달은 帝王들은 이후 2000년이 넘게 儒家의 禮治를 중시하게 되었다. 그것은 통치자의 修德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德治, 法이 아닌 사람이 爲主가 되었다 하여 人治라고도 불렀다. 그 결과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걸핏하면 法에 호소하는 미국 같은 사회와는 달리 가능하면 화장실과 함께 저만큼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겼다. ‘法대로’라는 말이 좋지 않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이야 당연히 法治가 강조되지만 옛날 法은 단지 禮를 보완하는 보조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이었다. 그나마 ‘刑不上大夫’(형불상대부·형벌이 고관계층에는 미치지 않음)라 하여 공공연히 특권층의 면책특권이 인정되었다. 대신 모든 것이 帝王을 頂點으로 구성된 거대한 인간집단에 의해 다스려지던 人治社會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자리잡고 있었다. 超法的 존재였던 帝王을 法으로 컨트롤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으므로 다른 方法이 강구되었다. 앞서 말한 修德이다. 즉 고도의 道德性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明君과 暴君, 賢臣과 奸臣(간신)을 구별했던 잣대는 德에 있었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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