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0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내용은 전에 없이 강경한 것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인해 그동안 호전되어온 한일관계가 원점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현까지 썼다.
김 대통령은 그동안 일본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대일 비판론이 비등할 때도 줄곧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 그는 5월16일 한일 불교지도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실증적으로 문제점을 검토하고 시정을 요구해야지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도 이에 따라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실증적인 재수정 요구 목록을 일본에 전달하는 등 차분한 대응 조치를 취해왔다. 과거 일본 역사왜곡 사건 때마다 되풀이됐던 ‘궐기대회’ 등이 거의 없었던 것도 정부의 이같은 대응 기조와 무관치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한국 정부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9일 왜곡 교과서의 수정을 사실상 전면 거부하고 나서자 김 대통령은 큰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김 대통령이 일본 문화개방 등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 일본에 대해 대범한 조치를 취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김 대통령의 실망과 불쾌감이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이날 일본측의 재수정 거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선 만큼 앞으로 교과서 왜곡에 대한 정부의 시정 요구는 보다 결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의 언급은 교과서 왜곡을 반드시 시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현이며, 곧 구체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김 대통령이 “일본이 이런 식으로 가면 이웃 나라 국민은 일본에 대해 의심하고 두려움을 갖게 된다”며 전후 독일의 과거사 사죄 및 배상 노력과 비교해 일본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김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일본의 부도덕성을 집중 제기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풀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수정하기 위해 중국 북한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과 연대해 대일 압박을 강화해 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日부도덕성 집중 제기▼
정부는 우선 이달 하순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회의에서 한중 외무장관회담 등을 갖고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등 대응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이 회의에서 한일 외무장관회담을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정부는 또 8월말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세계 인종차별 철폐회의에도 한완상(韓完相) 교육부총리 등 장관급 이상의 각료를 보내 일본교과서의 인종차별적 내용, 군위안부와 강제 징병 및 징용을 집중 거론하고, 9월 유엔총회와 10월 유네스코총회 등 국제회의에서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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