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의 반지’ 등으로 유명한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작품 연주가 이스라엘에서는 금기로 여겨졌었다. 나치는 선전 선동 집회 때나 유대인 수용소 등에서 웅장한 바그너의 곡을 집중적으로 틀어 이스라엘에서는 일찍이 그를 ‘친나치 반유대 작곡가’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독일민족주의를 고취해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유대인 학살의 영감을 불어 넣어주었다는 게 이스라엘 국민의 정서였다.
▷바그너의 곡이 이스라엘에서 처음 연주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50여년 만의 해금이었다. 소란이 인 것은 당연했다. 홀로코스트(대학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1991년에도 바그너 공연이 취소됐음을 상기시키며 공연 중단을 법원에 제소했다. 텔아비브 남쪽 작은 도시에서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청중 한명은 플라스틱 딸랑이를 흔들어댔다. 공연 중에도 80세 노인이 같은 동작으로 연주를 방해했다. 시위대가 콘서트 홀 밖에서 항의포스터를 전시하고 전단을 배포하기도 했다.
▷그런 바그너의 곡이 엊그제는 예루살렘에서 연주됐다.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에 의해서였다. 연주는 바렌보임의 즉흥적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바그너 음악은 연주하지 않기로 사전에 결정했었지만 바렌보임은 공연 말미에 청중에게 바그너 곡 연주 의사를 전달했다. 30여분의 논쟁 끝에 연주는 성사됐다. 물론 일부 청중의 반대도 있었지만 대다수 청중은 찬성을 표했고 연주 후에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스라엘 청중이 누그러진 모습을 보인 까닭은 뭘까. 예술과 이데올로기를 분리해야 한다는 바렌보임의 호소도 한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홀로코스트를 잊을 수는 없지만 과거 상처를 치유하는 데 성심껏 노력하는 독일의 태도를 수용하겠다는 생각이 이스라엘 국민의 마음 속에서 자리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우리의 마음을 들쑤시고 있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감정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라는 것인지, 마음의 문을 닫으라는 얘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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