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이 하락세(원화가치는 상승세)로 움직였다. 외환은행 수석 외환딜러 이진모 과장(42)은 달러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얼른 8000만달러를 팔아치웠다.
이 과장이 점심을 먹고 들어오자 갑자기 엔-달러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듯 원-달러환율도 바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3000만 달러를 사들였다. 달러값이 오르니 이번엔 기업체들이 들고 있던 달러를 시장에 내던졌다. 결국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더 떨어진 채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시장이 끝난 뒤 이과장을 만났다. “이런 날을 우리는 ‘왕복달리기를 했다’고 하죠. 아침엔 팔아서 깨지고 오후엔 사서 깨지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금도 지쳐 보이진 않았다. “외환딜러는 ‘고독한 승부사’입니다. 하루 실적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가 없죠.”
외환딜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통제력’이라고 했다. 아무리 깨져도 연연하지 않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과장은 과거 하루에 7억원을 잃은 적도 있었다. 그 날은 잠을 자면서도 ‘딜링’하는 꿈을 꿨다. 그 주(週) 다른 날에 많이 번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다.
외환딜러도 사람인 만큼 많이 잃을수록 통제력을 지키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실력과 경력에 따라 일중, 주중, 월중 손실한도와 거래한도가 있다. 손실을 만회할 수 있도록 거래를 계속하기 위해 ‘은폐’를 하면 바로 제재가 들어온다. 실제 거래를 잘 하더라도 손실을 숨기고 제재를 피하려다 업계를 영영 떠나는 딜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종의 ‘게임’인 딜링을 하면서 통제력을 유지하긴 쉽지 않다. 이과장도 85년 은행에 들어와 10년 이상 딜링에 매달렸지만 아직도 쉽지 않다.
딜러가 가져야 할 두 번째 ‘덕목’은 순발력. “거래하는 동안은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가 된 것 같아요. 아무 생각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오직 모니터에 떠있는 서너개의 창에 뜬 뉴스에만 몰두하거든요.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다간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쉽지요.”
딜러들 사이엔 ‘행동을 먼저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라’는 말이 있다. 실제 초심자들은 뉴스를 보며 ‘어어∼’ 두 번 하다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 이미 환율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결국 장을 지켜보다가 때가 되면 동물적 감각으로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게다가 외환은행만 하더라도 10여명의 딜러가 하루에 700∼800건을 거래할 만큼 눈코뜰새 없다.
스트레스가 심한 만큼 딜러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40대 초반인 이 과장이 이 바닥에서는 ‘할아버지’로 통한다. 딜러 일을 놓아야 할 시기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원이 되기에는 너무 성격이 활달하다는 평도 들었던 이 과장은 “아직도 승부를 즐기기 때문에 일이 즐겁습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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